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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시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 정여민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3. 10. 23.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라는 글로

2015년 제23회 우체국 예금, 보험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정여민"

14살이라는 나이에 쓴 시들을 모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14살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어른보다도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가족과 살고 있는 인적드문 작은 산골.

자연과 굴뚝의 연기만이 있는 것 같은 그곳에서

하늘로 오르지 못한 채 남아있던 연기가 봄이 된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감수성과 표현력이라니...


산골의 봄 中

 

(중략)

봄이 찾아와도 산골 굴뚝에선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미처 오르지 못한 연기는
집주위를 맴돌다 봄이 되어 버린다


 

바람도, 하늘도, 햇살도, 설렘도, 꽃잎도, 풀잎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내 마음만큼만,,

상대는 변함없더라도 결국 마음의 깊이, 너비만큼만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

 

봄의 징검다리 中

 

바람이 살며시 감싸주는

봄을 건너다

바람이 내 마음만큼만 실어 주고

하늘이 내 마음만큼만 열어 준다

 

(중략)

햇살은 내 마음만큼만 느끼고

설렘은 내 마음만큼만 이어준다

 

(중략)

꽃잎은 내 마음만큼만 밝아지고

풀잎은 내 마음만큼만 일어선다

 

(중략)


어른보다 더한 감수성과 표현력이 살아숨쉬는 14살의 시를 읽다보니

어느 순간, 천재성보다는

외로움과 홀로됨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는 14살 아이의 마음이 내게로 밀려온다.

 

어느 분이 되물었다. "글이 너무 어른스럽지 않아요?"

 

다시금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본다

돌멩이 많은 거친 땅에서 태어나 그 틈을 벗어날 수 없었다라는 표현은

아픈 엄마와 그로 인해 외딴 산골에 살게 된 가족과 본인의 현실에 체념한 듯 느낌이랄까?

햇살도 바람도 모른 척 지나가는 돌에 낀 키 작은 민들레는 사랑에 목말라 하지만 그런 자기를 보아주지 못하는 주변사람과 본인으로 대치된다.

여민이는 그 나이의 아이답게 사랑에 목말랐나보다.

그럼에도 애써 그런 감정을 감춘 채, 스스로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슬픔은 애초에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노란 민들레

 

돌담 돌아가는 길 봄 햇살 끝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돌멩이가 많은 거친 땅에서

힘들게 꽃을 피운 민들레는

그 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거친 땅에서

사랑을 더 받고 싶었던 민들레는

그 키도 땅에 붙었다.

그래서 햇살도 바람도 모른 척 지나가는

돌에 낀 키 작은 민들레가 되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온 대지를 비추는 햇살도 네 것이고

꽃잎 끝에 스치는 바람도 네 친구이니까

그리고 슬퍼하지도 마

슬픔은 꽃을 피울 때부터 네 것이 아니었으니까.


여민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그림자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실체가 있으면서도 실체가 없는 것 같은 그런 존재에 있어

함께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그림자만 이었던 것일까?

 

그림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림자

선명한 달빛이 내 그림자를 크게 만들어 놓았다.

 

보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림자

구름에 가려진 그림자가 내 마음을 덮었다.

 

보이는 것을 알아채 버리는 그림자

내 슬픈 생각이 그림자에 비추어졌다.

 

그림자는 오랫동안 내 옆에서

나를 지키는 전봇대가 되었다.


여민이는 쉬고 싶은가 보다

14살 아이답게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친구들과의 놀이를,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원하고 있는가 보다.

꿈꾸는 쉼표의 삶이 14살에게도 있기를...

아니, 쉼표가 있는 삶이 아니라 아직은 계속 쉴 수 있는 14살이 되기를...

 

쉼표

 

책 속의 글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자동차가 달리던 고속도로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해님도 구름에 가려 쉬어 가는 곳이 있듯이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지금은 쉬어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