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 삭막해져 가는 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직장에, 가정에, 그외의 많은 무게에
조금이나마 내려 놓을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면
오래간만에 시를 읽는다.
지금도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은 얼굴이
비 오는 날 파밭을 지나다 보면 생각난다.
무언가 두고 온 그리움이 있다는 것일까?
그대는 하이얀 파꽃으로 흔들리다가
떠나는 건 모두 다 비가 되는 것이라고
조용히 조용히 내 안에 와 불러보지만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면서도
입 밖에 그 말 한마디 하지를 못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또 다시 돌아 올 길은 기약 없으므로
저토록 자욱이 비안개 피어오르는 들판 끝에서
이제야 내가 왜 젖어서 날지 못하는 가를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낮닭이 울더라도 새벽이 오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므로
네가 부르는 메아리 소리에도
난 사랑이란 말을
가슴 속으로만 간직해야 했다
그리고
시들어가며 누워지는 꽃들에게서
안쓰러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