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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와즈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3. 1.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인권을 아주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율법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발생되는 이슬람 권역의 실상이 보여진다.

 

 

흔히 이슬람권 여성의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히잡이나 차도르를 말한다.

(이슬람여성 전통의상도 부르카, 니카브, 히잡, 차도르 처럼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율법이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시스템을 강제하고 교육하려는 학교와 사회.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그래서 서로 손을 잡아도, 메니큐어도, 화장도

어딘가를 가려도 해도 여자혼자는 자전거를 몰 수도, 운전을 할 수도 없는 사회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제약을 가하는 것은 이슬람의 여성들이다.

피해자였을 여자들이 그런 속박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또다른 여자들을 옭아맨다.

본인들이 그러한 속박의 피해자였음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속박이 속박임을 모르는 것일까?

 


10살 와즈다의 눈에는,

아빠의 모습도, 엄마의 모습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름답고자 하는 학교 언니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학교 언니가

왜 억압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와즈다 또한 그것에 항의하는 말들은 하지 못한다.

그저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다.

남자들만이 그려진 가계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살짝 붙여보는 작은 시도만 해 본다.

결국 그 시도조차도 떼어내지지만 말이다.

 

 

니카브 속에 감추어진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권리들.

남자앞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엄마와 딸 '와즈다'는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의 욕망은 꿈틀거린다.

니카브를 통해 보이는 두 눈에 모든 욕망을 담아내서 표현하듯.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이슬람의 여자들 뿐만이 아니라

이슬람의 사회속에서 숨은 조력자들에 의해 지원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 뿌리가 너무 연약해 물 한모금 주기가 조심스러운 새싹처럼

작게 움트고 있다.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쉼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듯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와즈다'의 소망에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옥상에서 자신의 자전거를 내어준 '와즈다'의 어린 '남자친구 압둘라'가,

자전거를 팔지 않고 기다려주던 문구점 '남자 주인 아저씨'가,

그리고 결국은 '와즈다' 가 '와즈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기를 희망하면서 자전거를 사주는 '와즈다 엄마'가,

변화를 응원해 주는 조력자들이다.

 

 

 

 

영화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린 여자아이를 그려가지만

자전거는 이슬람 사회의 여성인권 억압을 관통해 허물어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전거는 두 개의 바퀴로 움직인다.

그리고 '와즈다'와 '압둘라'는 사이좋게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남자와 여자, 두축은

그렇게 같은 속도로 균형을 맞추며 달려나가게 되기를 희망했나 보다

 

 

2012년 이 영화가 상영된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자전거 타기가 가능해 졌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자동차, 오토바이 운전을 허용하게 되었다.

 

현실을 뛰어넘어 앞서 달려나가는 와즈다의 저 앞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여성들의 앞 날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이슬람과 비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문제,

차별이라는 문제

를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