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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little forest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6. 29.

시험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귀농인이 된 재하

시골 농협을 떠나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고향에서 직장생활중인 은숙.



부모와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찾아

부모들의 삶의 터전, 자신들이 자라왔던 고향의 터전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의미없는 낯선 도시의 일상에서 그들이 돌아온 곳은

익숙함이 자리잡은 자연속 고향이었다.



영화는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요리로 가득하다.

혜원이 겪었던 혼자만의 단절된 삶은 ‘배고픔’으로 표현된다.

도시 삶속에서의 허기짐,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밥.

그래서 돌아온 혜원의 고향의 집, 엄마의 집은 배고프지 않은 곳이다,

배가 고파 돌아왔고 밥을 먹고 싶어서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자연스레 ‘혜원’의 기억속 엄마가 해준 요리와 맞물려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리를 통해 엄마와 연결되고, 과거와 연결되고 그리고 지금 현재와 연결된다.








영화속 집은, 고향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시간적, 공간적 장소가 된다.

그 시간적, 공간적 장소는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친구들과 어우러져 휴식과 위로의 공간이 된다.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농담을 지껄이기도 하고,

떡볶이의 매움을 핑계로 속에 있는 눈물을 흘려보기도 하는...

리틀 포레스트속 요리와 음식은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면은 원초적인 자연의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하다.

화면을 가득채운 아름다운 자연의 색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리들이 귀를 자극한다,

녹색의 소리...

노랑의 소리...

하양의 소리...

물의 소리...

비의 소리...

밤의 소리...

날 것인 자연의 소리안에서

일상의 달그락 거리는 그릇소리가, 물 끓는 소리가, 음식을 먹는 소리가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인간이 살아감을 깨닫게 한다.

  

온기가 있는 삶은 다 의지가 된다” 


재하의 말처럼

상처가 되곤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에 의지해 삶이 이루어진다.

말하지도 못하는 오구라는 존재조차도 의지가 되는 삶.

그 온기는 그저 사람, 동물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혜원에게 전해져 오는 바람의 온기, 나무의 온기, 꽃의 온기, 식물의 온기들.

자연속의 혜원은 그저 그들의 온기가 느껴지도록 그들안에 있기만 하면 된다,






겨울에서 봄, 여름, 그리고 가을로 이어지는 사계절, 자연의 흐름에 맡겨진 고향의 삶은

부모 세대가 살아가는 “작은 숲” 이기도 하지만

젊은 청춘에게도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흐름은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의 변화를 따라 흘러간다








혜원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쳐졌지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엄마에게 말해 준 것이 혜원이 자신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엄마의 자리는 허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던 혜원 자신의 도시 삶은

그저 정신적인 빈곤함, 육체적인 허기짐, 그리고 연결되지 못하는 관계의 허우적거림 뿐이었다,

삶은 재료 그대로의 맛이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의 삶은 단 것을 넣어도 단 맛지 나지 않고, 짠 것을 넣어도 싱겁기만 하다.

노력과 계획의 결과대로 살아지지 않고 일정하지가 않는 도시의 삶.

하지만 자연에서의 삶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나는

똑같이 일정치 않지만 있어야 할 맛들이 가미되어진 음식의 맛과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일상을 따분해 하면 무의미해 하면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바쁜 삶이 과연 문제의 해결일까?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엄마의 작은 숲은 ‘자연, 요리’ 였다.

혜원은 자신이 돌아왔던 그 겨울의 어느 날처럼 자신의 ‘작은 숲’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에 아주심기(옮겨심기를 하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 것)를 위해,

훌훌 떠난다.

그리고 그 겨울에 돌아왔던 것처럼 자신의 ‘작은 숲’이 있는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작은 숲’은 무엇일까?

내가 뿌리 내릴 아주심기는 무엇인지?

50여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지만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