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역사적 실화들을 다룬 영화에서 자신만의 시선과 사실적 연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쉰들러 리스트>, <뮌헨> 과 같은 영화는 영화같지 않은 평범함 속에서도 사실성을 간직하고 있다.
스파이 브릿지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간 이념 싸움이 극에 치달던 시기
전쟁의 공포가 광기처럼 흐르던 1950년대
각 국의 스파이들이 상대방 국가에서 활동하던 그 시절
미국의 적국인 소련의 스파이 ‘루돌프 아벨’의 변호를 맡으면서 양측의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비밀협상에까지 나서게 되었던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의 실화를 영상에 담은 영화다
흔히 스파이 영화라고 하면, 007 시리즈에서처럼 각종 폭파, 총기, 화려한 무기와 비행기, 자동차를 떠올리겠지만,
스파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파이의 활동보다는 그들과 그 주변의 사람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 행동, 신념에 대한 이야기만 펼쳐진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흔히 등장해야할 협상속 화려한 말의 잔치도 존재를 거부한다.
최대한 아껴진 약간의 말들만이 그들의 행동을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는 스파이 영화에서 그 흔한 총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미국 U2 정찰기의 추락장면에서의 미사일과 화염이 유일하다고 할까?)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자화상을 그리는 아벨의 모습은
실존하는 자신을 중심으로,
좌측은 실존과 좌우가 바뀐 거울 속 아벨이,
우측은 거울 속 아벨과 좌우가 바뀐 자화상 속 아벨로 대비된다.
좌우의 연속적 뒤바뀜으로 존재하는 아벨은
어느 것이 실존하는 아벨인지 구분할 수 없다.
좌와 우라는 것이, 바로 옆에서는 우와 좌로 변한다.
좌와 우라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서 전혀 방향성을 잡지 못한다.
마치 좌익과 우익의 이념대립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이념 대립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좌우가 어지럽게 혼재되는 카오스의 세계를 나타내는 듯 하다.
그리고 자화상을 그리지만
거울 속의 아벨의 옷과 자화상 속의 아벨의 옷은 다르다.
거울 속 아벨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듯 하얀색의 상의를 걸치고 있다.
반면 자화상 속의 아벨은 사회주의 인민복을 상징하는 듯 유채색의 입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스파이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 쪽의 삶은 살면서도 다른 쪽의 삶이 준거가 되어야 하는 스파이의 삶
미국에 의해서는 스파이로 낙인찍히면서도
자신의 조국 소련에 의해서는 스파이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의 이중적 결론.
스파이이면서도 스파이가 아니라는 신분의 이율배반성은 아벨의 평생과 함께한다.
적국의 스파이라고는 하지만, 변호인으로서의 ‘제임스 도노반’은 ‘아벨’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이 변호해야 할, 그리고 변호하기로 한 이상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상대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한다.
‘헌법이 다민족사회 미국을 만든다’ 는 신념과 ‘헌법’이야 말로 미국적 가치의 중심이라는 도노반의 신념은,
‘법의 본질’ 이 전쟁의 광기보다도 우선한다는 그의 행동과 연결된다.
영화는 소련에서 이루어졌던 ‘개리 파워스’에 대한 대우와 재판도 간략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나타난 방청객과 일반인의 광기와 별반 차이없는 모습들이
국가와 장소만 바뀌어 이루어지는 모습 속에서는,
양 이념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이데올로기조차도 보편타당한 법적 체계에 비하면 불완전함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문득 이러한 시대가 과연 1950대에만 국한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왔던 1980년대 1990년대에도 ‘국가’라는 절대적 권력과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인격적 권리와 법적권리들이 무시되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을 보곤 한다,
‘스탠딩 맨(서있는 사람)’
아벨이 도노반에게 마음을 열면서 말하던, 자신이 어릴 적 존경하게 되었던 어떤 아저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버지의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눈여겨 보라고 했다. 그를 지켜보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경수비대가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부모를 때리고 아버지의 친구도 때렸다. 그런데 그는 맞고도 일어났다. 계속 때려도 또 일어났다. 그러니까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일어서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당신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스탠딩 맨(서있는 사람)’
아벨과 도노반을 연결하는 단어이자 그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도노반’의 행동에 동의하는 ‘아벨’의 행동은 그저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내내,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헌법적 정신’에 입각한 행동을 보여준 ‘도노반’ 이야말로 ‘스탠딩 맨(서있는 사람)’ 이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스파이는 흔히 생각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선악을 구분하여 영웅과 악당을 찾으려 하는데, 평범한 인물도 악당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관용과 배려마저 중단해버린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고 영화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어쩌다 접하게 된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토믹 블론드 (0) | 2018.07.15 |
---|---|
콰이어트 플레이스 (0) | 2018.07.01 |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0) | 2018.06.30 |
little forest (0) | 2018.06.29 |
서울대치과병원-문화체육관광부 직장배달콘서트 -힐링 유랑극장 "동행" (0) | 201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