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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6. 2. 28.

주인공 남자는 전 재산이 4,264원 밖에 없는 빈털터리 삼류 작가다.
공모전에서는 계속 떨어지고, 훗날을 기약하며 글을 쓰지만 의욕상실에 의기소침이다.
주인공 여자는 주식하다 망했다.
주류의 세계에서는 뒤떨어져 있는, 그러나 자신의 해왔던 그 삶에서 바뀌지도 못하는, 미련의 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둘은 불광천에서 같은 알바자리를 얻는다.
의뢰인은 노인. 노인은 두 사람에게 하루 일당을 주며 불광천에 있는 오리 사진을 매일매일 찍어 오라고 했다.
그 많은 오리 중 어느 하나가 노인이 키우는 고양이 호순이를 물어 죽였고, 노인은 그 오리를 잡고 싶었던 것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노인의 손자까지 합세하여 오리를 잡기 위한 특명속에서,

그들은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 낸다.

바로 호순이와 비슷한 고양이를 찾아서 ‘사실은 호순이가 죽은 게 아니고 이렇게 살아있다. 그 호순이를 찾았다’며 노인에게 고양이를 넘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고양이보다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만 집중했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비실재성 때문에 역설적으로 묵직한 존재감으로 다가왔고,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두뇌는 한번 사로잡힌 실재성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진짜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가짜라니. 새삼스레 한숨이 나왔다. -173p.

한편 노인의 아들은 고양이를 잡아 먹은 가짜오리를 만들어 노인이게 넘기고자 한다.

가짜 고양이 가짜 오리를 앞에 둔 노인이 마주한 새로운 상황.

가짜들이 비일비재한 세상속에서, 가짜가 가짜가 아닌 세상???

진짜가 진짜이지 않을 수 있는 세상.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세상.
경직된 사회에서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 그런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는 많은 진짜들 중에서 가짜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하지만, 한편으론 수많은 가짜들 중에서 진짜를 찾아야 하기도 한다.
진짜와 가짜는 이 시대를 포괄적으로 양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의 의미.
진짜와 가짜가 정말 중요한지를 한편으론 묻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거부하는 시늉은 낼 수 있어도

마지막까지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

제아무리 저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저쪽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이쪽에 구질구질한 족적을 남기며 생을 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 냄새 나는 빨랫거리가 입증하고 있었다.

노인의 정신은 저쪽을 지향하면서도 이쪽의 구질구질한 족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진 못했을 테다.

어쩌면 그래서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이 가장 강하다지만

노동력이 희소할 때는 노동력이 자본을 이기기도 하는 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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