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복잡다단한 우리의 삶을 단순화한다면
행복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대통령을, 갑부를 꿈꾸는가 하면,
누구는 그저 하루하루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밥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정의하는 수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저마다 행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우리는 해 나가고 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성실한 나라의 엘리스 속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처해진 현실 속에서 직장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남편이 원하는 집 한 채를 마련해 살면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여주인공은,
행복을 이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성실하게 일을 해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실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현실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꼬여만 간다.
현실의 어려움을 풀어나가기 위해 더 성실해 질수록, 주인공은 성실한 사람과는 더 멀어지는 사람이 되어간다.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하게 되고, 또 살인을 하게 되고...
❝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이미 삶에 찌들어 버려 더 이상 성실함을 요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주인공의 모습.
웃지만 그 웃음이 상대에게는 웃음으로 보여지지 않는 그 상황에 이르러서야
주인공은 떠난다.
코믹하지만 전혀 웃을 수 없는,
슬프기에 더욱 진한 여운이 남는 주인공의 삶은
영화내내 이어지는 여주인공(이정현)의 무표정한 연기만으로도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기에 커다랗고, 목소리 큰 무리 속, 가녀리고 왜소한 주인공의 행동은 더 안타까움이 전해져 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아쉬움과 무거움은
행복해지고 싶기만 한 성실한 그녀가 부딪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기득권을 가진 재벌이나, 국회의원, 검사 등등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거촌의 운동가, 경찰, 힘 없는 누군가 등등
행복해지고 싶은 주인공과 행복해지고 싶은 또 다른 소시민들은 그렇게 자기의 행복을 위해 서로 부딪히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현실은,
기득권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동하고
소시민들은 기득권의 리그에 끼지 못한 체 결국 테두리 처진 우물 속에서 땅따먹기 하듯 행복을 뺏어먹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정현을 다시보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이정현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더 놀란 작품이라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듯 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는 살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 자신도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그녀의 편이 되버리고 만다.
그런 역할을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배우 혼자의 내공으로 끌고 가다니...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왜 받았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접하게 된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동 - 애매하다 성장영화로도, 코믹영화로도 (0) | 2020.04.30 |
---|---|
옥자 (0) | 2020.03.08 |
결혼이야기 - 관계 속의 이혼도 결혼의 일부일 뿐 (0) | 2020.01.04 |
맨인블랙 - 인터내셔널 : 속편은 역시 안되는구나 (0) | 2019.12.29 |
판소리 복서 - 시대가 끝난거지, 우리가 끝난거 아니다 (0) | 201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