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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떠나고 싶은 여행/경상도

울산 - 죽어서 나라를 지키고, 산업으로 국가에 이바지하다 (태화루, 국가정원, 젊음의 거리, 대왕암)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12. 24.

울산이라는 도시로의 첫 방문

양산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울산

어둠이 내려앉아 울산의 낮풍경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태화강 국가정원의 야경을 보기 위해 출발...


국가정원 근처에는 각종 카페와 음식점들이,

역시나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함을 짐작할 수 있다.


입구에는

울산 태화강의 밤을 밝혀주는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다.



태화강의 십리대숲길

(태화강의 약 4km 구간에 걸친 대나무 군락지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 정원, 면적 : 109,866㎡, 대나무 약 50만본(20~30폭))

태화강변을 따라 늘어선 울창한 대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어두운 밤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쁜 조명 불빛 때문일까,

많은 연인들이 발길을 잇고 있다.

물론 지원 주민들의 산책들도 이어지고 있고




대숲십리길의 밤은 은하수길로 바뀌어

하늘의 별들 속을 걷는 것마냥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약간은 싸늘한 바람(울산의 바람은 생각보다 쎄네요) 속에서 걷는 대나무 숲길의 아름다움.

(담양 죽림원의 자연스럼에 비해면 인공미가 너무 많은 아쉬움이 크지만)

혼자여도 좋다~~










울산 건물들의 불빛 사이에 한적한 걷기를 제공해 주는

태화강 국가정원

불빛과 정원이 주는 여유가 묘하게 대비된다.

(국가정원이라고 하긴 하지만 과연 국가정원으로 지정될 만한 규모나 아름다움일까는 모르겠다)








십리대숲길의 바깥에는 조그만 정원들이 아기자기 꾸며져 있다

갈대들도 자신들의 위치에서 정원의 일원이 된다 








저 멀리 아파트의 불빛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태화루의 모습은

현대와 과거의 공존이라는 식상하지만 다른 말로 대신할 수 없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태화루까지 나를 이끈다.








울산 성남에는 특이하게 젊음의 거리가 있다.

태화루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떡하니 젊음의 거리가 나타난다.

서울의 대학로나 명동, 가로수길처럼, 젊은이들이 젊음의 특색을 가진 거리를 만들고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이유였을지 모르겠지만,

월요일 저녁이라서 일까?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젊음의 거리라는 명칭까지 부여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특색이 전해져 오지 않는다.

그저 알 수 있는 브랜드의, 알 수 있는 상품들로 꾸며진 상업지구에 불과해 보인다.

주말에는 어떤 모습일까?

 






성남 젊음의 끝자락에는 울산큰애기 야시장(중앙전통시잔)의 시작과 맞물린다.

연중 무휴라고하지만 실제로 월요일은 휴무.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지 월요휴무로 인해 시장안은 을씬년스럽기만 하다.

 




울산 시내구경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울산 일산해수욕장쪽(대왕암쪽) 으로 택시로 이동

울산 시내에서 대왕암까지는 시내버스로는 너무 오래 이동을 해야해서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자는 규칙을 깨고 택시로 이동.


(울산 장생포 고래고기가 유명하지만, 혼자서 그곳에 가서 고래고기를 먹기는 애매해서 패스.

택시기사님께서도 예전 포경이 가능하던 시절에야 신선한 고래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냉동고기라면 별로 추천을 않하신다. ㅜㅜ)

 

짐을 풀자마자

대왕암의 야경을 보기위해 보고,

다행히 숙소 바로 옆이 입구.... ^^



대왕암가는 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일산해수욕장의 야경이 휘황찬란하다.

활황기때는 서울보다 소득수준이 높아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있었다더니 상상이 간다.

오른쪽의 현대중공업도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해안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대왕암에 도착.

울기등대의 불빛이 울산 앞바다의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인다


울기등대(蔚氣燈臺)는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의 대왕암 공원에 위치한 등대로,

1904년 2월 8일 뤼순항의 러시아함대를 기습함으로써 발발한 러일전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일본 해군성은 해상권 장악을 위하여 항로표지 설치 필요성을 느끼고 한국정부와 협의하는 형식을 취한 후, 체신성에 위탁하여 조선시대 말을 먹이던 목장인 이 곳에 급하게 나무로 만든 장대 같은 등간(燈竿)을 설치 운영하였고,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조약으로 전쟁이 종료되자 한국정부에 인도하였다.

1906년 3월 한국정부는 항로표지 관리를 세관공사부 등대국이 맡도록 하고, 전시에 급조된 전국 32기의 항로표지를 개축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중 하나인 울기등대는 1910년 6월 25일 기존의 나무 등간이 높이 6m의 백색 8각형 콘트리트조 등탑으로 새롭게 개축되어져 동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등대 주변의 해송들이 자라나서 등대불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12일 기존의 위치에서 50m 가량 옮겨 촛대모양의 아름다운 등대를 새로 건립하고, 기존의 등탑은 등대문화유산 제9호 및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보존하고 있다.




대왕암과 연결되는 다리 색의 변화가

밤의 어둠과 바다의 소리를 물리치며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왕비를 지키고자 하는 듯 하다







해안산책길이 아닌 대왕암공원 중앙광장은 다양한(익숙한 브랜드들) 카페들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