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해가 길어졌다.
미세먼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오늘의 퇴근길 걷기는 이화동 - 벽화마을 - 낙산 - 혜화문 코스.
몇 번의 방문길이지만
이화동에서의 시작은 오늘이 처음..
햇살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골목 하나하나를,
벽돌 하나하나를,
빛과 소리 하나하나에 빠져본다.
관광객도, 거주민도 드문드문
과거보다 한적하고 조용한 이 시기이 좋다.
마을을 이루는 계단이며, 꽃이며, 나무이며,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마을을 그대로 구성하고 있다.
이제는 퇴색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림들도
언제 단장을 했는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알록달록 원색의 건물들은 여전히 관광객과 연인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지만
많은 가게들의 손바뀜과 공실들도 눈에 띈다.
마을을 지키시는 어르신은
마을의 수호자이자 초행자들의 안내자이시기도 하다.
이 곳, 저 곳 길 안내도 척척해주신다.
벽화마을 초반 절벽위에 자리잡은 집들은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전에 찾아던 이곳에 생존의 투쟁을 위한 글귀를 보았던 생각을 떠올려본다.
이제 이 마을에서 그 흔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의 삶은 절벽앞의 아찔함처럼 위태로운 부침을 겪고 있지나 않을까?
딸과의 편한 휴식만큼이나
집을 지탱해야만 하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부담감을 이들은 이 공간에서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곳에서 천사를 꿈꾸기도 한다.
죽기 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연 속
나는 어떤 소원을 희망하고 있을까?
아직은 삶의 방향이 혼란스러운, 그래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소원도 뚜렷하지 않다.
미세먼지 속 저녁 노을은 여전히 하루를 정리하게 해 준다.
오늘 하루는 내게 좋았던 하루일까?
어느 외국 가족의 하루는 노을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서울을 내려다보며, 부부는 서로의 이야기를 아이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낙산공원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그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저녁을 맞이한다.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는 저기 3명의 여행자들의 행복이 하루를 마감하는 이 시간
이 곳에 충만하다.
풍경과 사람에 취한 채 걷다보니
어느새 다다른 혜화문.
걸린 시간보다 행복했던 오늘의 걷기도 이제 마무리.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써 15년이 지났네. (0) | 2019.10.14 |
---|---|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 의성 용연사 (0) | 2019.05.12 |
또 하루 간다 (0) | 2019.05.01 |
장모님 첫 제사 (0) | 2019.04.28 |
봉은사 - 명성과 실제의 간극 (0) | 2019.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