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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떠나고 싶은 여행/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돌아보기 2 - 호랑이 없는 인왕코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2. 6. 8.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인왕산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 한영도성 순성길 코스는 시즌 2의 마지막 인왕산 코스

창의문에서 시작해 기차바위를 거쳐, 인왕산 정상, 그리고 돈의문 박물관마을 까지의 걷기...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필운동누상동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北岳山)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다.

경희궁 뒷편 사직동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앞 인왕산로 1길을 서울성곽이 이어지며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 범바위를 지난다. 서울성곽은 인왕산 정상부로 이어지는데 메부리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로 이어지고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자하문(창의문)과 연결되고 그 다음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인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사찰이 많았던 곳이며 현재도 5~6곳의 사찰과 암자가 있다. 조선 중기 명나라 사신이 임금을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연유로 필운대(弼雲臺)와 필운동(弼雲洞)의 이름이 남아있다. 필운대에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남아있다(현 배화여자고등학교 교내 소재). 옥인동은 옥류동과 인왕동이 합쳐진 이름인데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북쪽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다양한 이름들이 지어져 있다. 선바위는 인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데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 모자를 닮은 모자바위, 돼지를 닮은 돼지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가 있고 남쪽 능선 정상에 있는 달팽이바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유명하다. 호랑이 굴이 있는 남쪽 능선에 호랑이바위, 정상부에 이르면 뾰족한 메부리바위가 있으며 삿갓모양의 삿갓바위가 인왕산 정상이다. 그외 치마바위, 해골바위, 기차바위, 부처님바위 등이 있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樓臺)가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강희언(姜熙彦)의 《인왕산도(仁王山圖)》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대와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표기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들어서 ‘仁王’으로 옛 지명이 환원되었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군사적인 이유로 1968년 1월 21일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3월 25일 정오부터 개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왕산 [仁王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북악코스와 인왕코스가 갈라지는 창의문에서 오늘은 윤동주 문학관 방면으로 ~~~

30여년전의 군생활 때는 이곳에 사람도 적었는데...

소초에서 먹을 간식을 사러 잠시 외출나왔을 때의 그때의 빵집과 가게들을 대신해 이제는 사람들이 북적북적인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윤동주 문학관과 공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했는데, 그가 이 일대를 거닐며 시상(詩想)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보아 이 자리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였다. 언덕 위에 그의 대표작 ‘서시’를 새긴 커다란 시비가 있으며, 가까이에 윤동주문학관도 있다.
* 윤동주 문학관 관람 시간 : 10: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휴무

 

자유롭게 입장해서 윤동주 시인의 기억들을 더듬던 과거에 비하면

문학관이 규모도 커지고 체계화 된 것 같기는 한데,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입장을 기다리라고 한다.

등산이 주 목적이었기에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번에는 그냥 패스하는 것으로...ㅜㅜ

 

윤동주 문학관 윗편에는 이렇게 시비가 남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서시"

그 옆에는 애완견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시민의 모습이 인상깊다.

윤동주가 꿈꾸던 시대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이냐 동물이냐 식물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는 삶들.

문득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어느 코스에서 오더라도 북악코스보다는 완만한 인왕코스.

북악코스보다는 복장도 훨씬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사람들의 사랑도 많이 받는 것 같다.

완만하게 시간하는 성곽과 계단을 따라 오르기 시작.

이번 코스는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 여유로운 숨과 발걸음 속도로 주위를 많이 보기~~~

성곽길 바깥쪽에 잘 정돈된 시설이 보인다.

박물관인가? 전시관인가?

의문을 품기만 한 체 지난다.

백악산(북악산)에 총탄의 흔적이 있는 "잊지말자 소나무(김신조 소나무)" 가 있다면,

인왕산에는 뿌리가 연결되어 서로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한양도성 부부소나무"가 있다.

인왕코스에서 바라본 백악산의 모습도 보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인왕산 정상과 기차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기차바위를 둘러보고 다시 인왕정상에 가는 것으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기차바위 가는 길은 멀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다.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구름이 끼어 날이 덥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차바위에서 바라 본 인왕상 정상의 모습

백악정상보다 정상 약간 낮은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백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왠지 모를 강인함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반해 

산에서 주는 분위기는 편안함 이라고 할까?

기차바위를 뒤로 하고 갈림길까지 왔던 길을 걷다가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다 보니

어느새 금방 인왕산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인왕산 정상에는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를 알리는 표시도 위치한다.

산 정상은 이미 등산객으로 가득...

인증을 하기 바쁘다.

줄서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다니...

서대문 방향도

백악산 방향도

광화문 방향도

청와대와 남산을 잇는 풍경도

남산과 명동, 을지로의 풍경도

영등포 방면도

모두 들어온다.

북적북적한 인왕산 정상을 뒤로 하고

돈의문 방면으로 내려오다보니,

이곳이 정말 포토뷰 맛집임을 느끼게 한다.

걷다가 지체되는 구간들을 보면, 어느새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는 포토존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도심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남긴다.

그런데 좀 과하신 분들도 있다.

길을 전세낸 것마냥 다른 사람이 기다리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체 모델포즈로 수도 없이 많은 사진컷을 찍는 ㅜㅜ.

제가 강제로 그분들의 얼굴과 몸매를 계속 보면서 기다려야 하나요? 제발 최소한의 예의만은...

사직근린공원 부근까지 내려오다보니

한양도성 전 구간 중 성 안과 성 밖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성벽 안쪽의 내부순성길에서는 도심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편히 걸을 수 있고,

성벽 바깥의 외부순성길에서는 담쟁이넝쿨과 고풍스러운 성벽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

조경 및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밤에 보는 성벽의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하는데 오늘은 시간상 구경 불가.

어느 곳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외부순성길로 가는 것으로 결정

확실히 외부순성길이 성곽의 예전 흔적을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축조연대별 모습도 확인이 되고, 고양이들과 새들이 함께하는 자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기존 바위를 활용하여 성벽을 쌓은 것도 신기하다

바깥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속 길을 따라 돈의문 터로 연결된다.

조선시대부터 서울 4대문 안의 집값이 엄청 비쌌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4대문의 바깥은 예나 지금이나 4대문 안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과,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하는데,

집의 형태와 시간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습이다.

주거지를 걷는 길이니 큰 소리가 나지 않게 걷는다.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생각지도 않은 공원, 기념지가 나온다.

천천히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더 좋을 듯

월암공원을 따라 깨끗하게 새로 정비된 한양도성 성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을 조성하다가 서울시 복지재단(구 기상청 건물)의 담장 축대 아래 묻혀있던 성벽의 일부가 드러났다고 한다.

홍파동 홍난파 가옥 부근 연립주택 건물 주차장 뒤편에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역사의 흔적이 사람들의 관심밖 어딘가에서는 존재하다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우리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교육청 앞 장미가 제법 이쁘게 자라나 있다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걷다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너무 예전에 걸었나 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없어진 돈의문과 광희문에 대한 역사들이 남겨진 곳,

근현대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이곳도 어느 시간이 되면 역사의 한 장이 될 곳이다.

흥했던 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모습도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걷던 길이 전차길로,

전차길이 다시 자동차길로,

4대문이었던 돈의문, 4소문이었던 광희문은 어느 순간 시대의 필요에 의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역사의 회복을 위해 복원을 하고자 했지만,

또다른 제약들로 인해 철거전의 상황으로 되돌려지지 못한다.

가상의 공간과 미니어쳐만이 존재하는 돈의문



돈의문(敦義門)

조선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서대문. 조선시대에 한성에서 평안도 의주까지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발점이었으며, 외교사절이 오면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는, 나라의 중요한 문이었다. 일제에게 철거당한 이후,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12에 터만 남아있다.

'돈의문(敦義門)' 뜻은 '의(義)를 두텁게 하는(敦) 문(門)'이다. '의(義)' 자는 전통적으로 서쪽을 가리켰기 때문에 돈의문 이름 뜻을 '서쪽을 두텁게 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세종 4년(1422)에 세종은 서전문을 헐어버리고 오늘날 신문로 언덕 위에 새롭게 문을 세운 뒤 이름을 옛날과 같이 돈의문이라 하였다. 이 문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돈의문이다. 백성들은 세종이 세운 돈의문을 '새로 세운 문'이라는 뜻으로 '새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구한말에 정동에 들어선 새문안교회도 '새문 안에 세운 교회'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육조거리에서 돈의문까지 잇는 길을 새문안길(신문로)라 불렀으며, 이게 현 도로명 체계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새문'이라는 호칭이 '막을 색(塞)'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옥들을 복원도 해놓았네요. (규모가 크지는 않아요)

한옥사이길을 걸으며 한옥 처마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정감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아파트의 꽉 막힌 느낌보다는

한옥의 마루에서 올려다보는 자연의 정겸들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2층 규모의 돈의문역사관은

아담한 규모에, 돈의문 일대의 예전모습을 회상해 볼 수 있도록 해놨다.

물론 조선시대 초기의 모습은 그림으로만 유추해 볼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 새문안마을의 모습은 사진과 미니어쳐로 직접 볼 수 있어서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문의 모습과 성곽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다.

그리고 초가지붕과 기와지분의 모습들도 선명하게 구분되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이후의 근대에는 이렇게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건물들이 돈의문 구락부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박물관에는 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경희궁의 담장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원래 100여 동이 넘는 전각이 있는, 경복궁, 창경국과 함께 조선의 3대 궁으로 꼽히던 경희궁은 그 규모와 역사로 인해 서월이라고도 불렸으나,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돈의문 구락부에서는 때마침 조용한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다.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을 가진 건물들.

새문안 극장, 새문안 만화방, 돈의문 콤퓨타게임장, 서대문 사진관, 칠성사이다를 파는 분식점 등등

 

국민(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말뚝박기 ^^

그렇다.

라면을 왜 이쁘게만 먹어야 하는 거지? 맛있으면 그만!!!

예전에는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뚜껑에 덜어 호호 불어가면서 먹었는데...

추억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