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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떠나고 싶은 여행/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돌아보기 2 - 백악코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2. 5. 3.

한양도성 순성길 오늘의 코스는 백악코스 (북악산 코스, 김신조 루트로 더 알려진)

혜화문에서 출발해 말바위안내소, 숙정문, 청운대, 백악산 정산, 창의문을 거쳐,

다시 청운대에서 만세동방, 삼청쉼터, 법흥사터, 숙정문을 도는,

거의 백악산(북악산)을 헤집고 다니는 코스

혜화문은 낙산코스의 기점이기도 하고, 백악코스의 기점이기도 하다.

혜화문을 잠시 다시둘고 보고 혜화문 앞 정자에서 신발끈 조여메고 오늘 하루의 여행 시작.

한양도성 순성길 완주 스탬프 등을 찍거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들러서 사전에 정보를 얻는 것도 좋겠지만,

난 이미 한번은 완주를 한 상태... 별도의 완주증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패스~~~

한양도성 순성길, 말바위 안내소 방향으로 성곽을 따라 걷습니다.

이곳은 예전에는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하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이곳저곳 성곽에 대한 보수공사가 진행중이구요.

모르는 사람이 걷다보면 그냥 동네 골목길로 연결되어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경신고등학교 담벽이 성곽위에 쌓여진 것도 이채로울 수 있을 겁니다.

경신고등학교의 담벽 성곽은 성북동의 도로를 맞아 잠시 끊깁니다.

(이쪽에 돈까스 집과 먹거리 집들이 많아요. 예전보다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지만 ㅜㅜ)

도로를 건너면 이렇게 와룡공원과 말바위 안내소를 향하는 깨끗한 길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정비되어진 성벽을 보고서야 이제부터 본격적인 순성길 코스가 진행됨을 느끼게 됩니다.

와룡공원 탐방로쪽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올라가면서 성곽 내부길을 계속 보게 될 터 저는 성곽 외부 탐방로 길을 선택합니다.

 

저희 동네에서 보면 이곳 성곽 외부 탐방로의 조명으로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는 성곽의 모습을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개발을 할 수 없는 위치의 낡은 집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성북동의 모습도 좋습니다.

호흡을 조금씩 틔워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말바위 안내소가 보입니다..

초반에 난코스인 계단이...ㅜㅜ

그래도 뚜벅뚜벅 올라가서 출입증을 받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받았지만,

이제는 신분증 확인없이 그냥 출입증만 받아서 입장하면 됩니다.

청와대도 이전하는 시기에 출입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일단은 절차를 따라야겠죠.

이 출입증은 백악코스를 따라 이동하면서 계속 목에 착용해야 합니다.

착용하지 않고 걷다보면 중간에 착용을 요청하는 관리자들을 만나게 될 거에요 ^^


숙정문(肅靖門)


서울특별시 종로구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있는 조선전기 서울 성곽의 4대문 가운데 북쪽 문(門)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하였다.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다. 또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소문을 통과했지 숙정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숙정문보다 동소문이 한양 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문을 폐쇄해도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 다만 한재(旱災)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성문안 숭례문(崇禮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이라고 한다.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523년(중종 18)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숙정문이라 호칭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하였다.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

대로변에서 먼 성북동. 그곳에서도 산 중턱에 있기에 실제로 통행로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군사적 기능으로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숙정문.

그래서인지 숭례문(남대문)이나 흥인지문(동대문)에 비하면 크지는 않다

그렇지만 왕래가 없는 산속에 위치해 있기에 성문과 좌우로 연결된 성곽의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숙정문에서 바라본 남산쪽으로 모습이 뚫려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백악정상을 향하여 다시 출발..

새로 개방된 법흥사터는 숙정문에서도 삼청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연결되어 있다.

 

청운대와 백악 정상으로 가는 길에 있던

수도방위사령부 30경비단의 5소대 막사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몇 년전에 왔을 때만 해도 소대막사와 연병장은 남아 있었는데, 이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곳에는 늘어난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가 위치하고 있다.

소대부식을 받기 위해 오르내리던 계단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성곽길은 안쪽 길과 바깥쪽 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안쪽 길이 식상한 분들은 외곽 길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청운대

북안산의 전면개방을 기념하여 서울의 진산인 북쪽 최정상인 백운대(836m)를 본떠 만든 이름이다. 청운대는 북악산에서 경복궁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경복궁을 바라보면 마치 조감도를 보는 듯 궁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21사태 소나무

그때 탄흔 자국들이 남겨져 있다.

군 생활때는 "잊지말자 소나무"라고 했었는데...

드디어 해발 342m의 백악산 정상

예전에는 수도방위사령부 방공단의 발칸진지가 있던 곳인데

이곳도 부대의 자취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져 버렸다 ㅜㅜ

백악 정상 근처에는 등산객들이 너도나도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들을 취식하고 있다.

힘든건 이해하겠는데, 이곳이 그리 넓은 곳도 아닌데

그냥 잠시 쉬었다가 가면 안되는 걸까?

굳이 돗자리까지 깔고 앉아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 한금 먹고, 서울시내를 둘러보고

창의문을 향한 내리막길 시작...

창의문쪽에서 북악정상을 오르는 이 코스는 가파른 계단 코스로 깔딱길이다.

군생활 시절, 대표적 얼차려 코스이기도 한 곳. ㅠㅠ

다른게 있다면 그때의 돌계단이 지금은 나무계단으로 정비되었다는 정도?

깔딱계단은 여전하다

3소대가 있던 막사터와 연병장 터에는 나무와 풀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예전 일들을 회상하면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창의문 안내소.

출입증을 반납하고. 창의문을 둘러본다.

(창의문 안내소는 백악코스와 인왕코스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창의문(彰義門)

조선 한양도성의 4소문 중 북문

'창의문(彰義門)' 뜻은 '올바른 의(義)를 드러내는(彰) 문(門)'으로, 조선 초 개국공신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창의문은 북문이면서도 정북방이 아니라 서북쪽에 있는데, '의(義)' 자는 전통적으로 서쪽을 가리켰기 때문에[4] 창의문 이름 뜻을 '서쪽을 밝게 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별칭으로 '북소문(北小門)',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북소문(北小門)'은 말그대로 '한양도성의 북쪽(北) 소문(小門)'이란 뜻이며, 자주 불리진 않았다.
'자하문(紫霞門)' 이름은 '자핫골의 문'이란 뜻이다. '자핫골' 지명은 한양 천도 이후에 창의문 일대의 풍광이 마치 개성의 명승 '자하동(紫霞洞)'과 비슷하여 '자핫골'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1396년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의 지시하에 축조된 관문이었다. 이후 3대 왕 태종 당시 풍수지리 학자들이 왕조에게 불리함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민간의 출입이 폐쇄되었다가 11대 왕 중종 때에 들어서 재개방되었다.
14대 왕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문루가 소실되었고 15대 왕 광해군 말기 인조반정 때 반정군들이 통과했던 관문으로 이를 통해 반정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21대 왕 영조 때 들어서 왜란 때 소실되었던 문루가 복원되었으며 산 속에 있었던 영향 때문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수난을 어렵게 면했고 1958년 보수공사를 받은 것을 제외하고 온전하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21사태 때는 김신조 일당이 이 곳에서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그 때 공비의 총격에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근처에 세워져 있다.


창의문을 나와 부암동 우측으로 걸어가다 보니

한양도성 가는 길이 보인다.

처음 와보는 길.. 무작정 들어섰더니..

어라!!! 북악 1번 출입문(청운대 안내소)으로 가려다 보니 카페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속에 카페쪽으로 오르다보니 카페 뒷편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다.

청운대안내소까지 gogo

청운대 안내소는 다른 안내소보다는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보이네요.

그렇지만,  주차장도 있어서 중턱부터 오를 계획이신 분한테는 좋을 듯

계단 길이 지겹기는 하지만, 오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청운대 갈림길에 다다릅니다.

숙정문에서 올라오면서 이곳을 지났던 곳인데 새로 개방된 법흥사터로 향합니다

내려가다보니 촛대바위도 보이네요

이왕 온김에 법흥사로 내려가지 않고(사진찍는 쪽이 법흥사로 내려가는 길)

만세동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만세동방 코스를 선택

만세동방은 약수터의 윗쪽 바위에 크게 써 놓은 글자네요.

약수터라는 안내가 무색하게 약수물은 마실 수는 없는 상태이고

만세동방은 나라의 번창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경복궁의 뒷편 산임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부터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만세동방을 뒤로 하고 삼청쉼터 갈림길로 내려오니

다시 법흥사와 청운대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생각보다 쉬지 않고 걸어선지 피곤이 밀려오네요

쉼터에서 잠시 휴식!!!

지친 발걸음으로 오르다보니

법흥사 터가 나옵니다.

얼마전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 코스 개방 기념 등산을 하면서 앉았던 돌에 대한 비판 기사들이 나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곳입니다.


법흥사 터

신라 진평왕 때 나옹 스님이 창건한 법흥사 터라고 전해지던 곳으로,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연굴사 동쪽(지금의 삼청터널 근처)에서 호랑이를 사냥했다"라는 내용을 통해 연굴사 터로도 추정된다. 또 절 터 주변에서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조선 전기부터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들어갈 수 없도록 출입이 막힌 곳이라

멀리서 논란의 그곳을 봅니다.

과연 안내문이 없다면 저곳이 법흥사 터인지 알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불교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라면 비난을 할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이 곳을 제대로 정비하고 복원하는 청사진을 불교계에서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법흥사터를 뒤로 하고 갈림길에서 숙정문쪽을 향해 다시 오르기를 한참

어느덧 숙정문이 내 눈에 다시 들어온다.

내려가는 길은 말바위 안내소가 아닌 숙정문 안내소방향으로...

숙정문 안내소는 숙정문을 나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가면 됩니다.

원체 말바위 안내소가 유명하고 혜화문에서 오는 경우는 말바위 안내소를 경유하기에

숙정문 안내소를 통해 성북동으로 가는 코스는 인적이 뜸한 편입니다.

이곳에서도 다시 출입증을 반납하고

성북동으로 마저 내려갔더니

2007년 노무현 대통령때 북악산 전면개방이 이루어졌음을 기념하는 기념 조림  석재가 있습니다.

당시에 한꺼번에 모든 개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땅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사업의 시작은 이때부터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양순성길 순례 뒷 이야기.

창의문 밖에는 "창의문 뜰"이라는 한옥카페가 있습니다.

한양순성길 등산의 끝이나 시작때 잠시 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큰 창 너머 오가는 사람을 보는 재미와 마당에 핀 꽃들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작품 전시가 계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마침 제가 갔던 시간에는 손님이 없어서 혼자서 "권순옥 작가전"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