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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 유홍준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1. 21.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저자의 미학관이며, 조선의 궁궐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의 지배자인 왕의 정무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기에 양반과, 일반 백성의 것보다는 위엄이 있어야 하나 너무 화려해서 그들과 위화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조선 궁궐의 기본적 정신이 실현된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답사기를 읽다보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눈에 매일 비쳐 그저 지나 가는 것들이 품고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의미들을 깨닫게 된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신 사당으로 일종의 신전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덤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을 지어 혼을 섬긴다. 후손들은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며 자신의 실존적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다.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곧 왕이 왕일 수 있는 근거였다.



종묘에서는 향대청, 재궁, 정전, 영녕전, 전사청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양의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다






창덕궁에서는 돈화문,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등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같은 법궁이지만 경복궁이 정무를 보는 곳으로서의 권위적 느낌을 지닌다면,

창덕궁은 같은 법궁이지만 생활공간과 정무과 함께하는 인간적 느낌을 전달해 준다.





창덕궁 후원에서는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존덕정, 옥류천, 신선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원을 창덕궁과 구분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을 경영하고 함께 어울리는 우리나라 정원의 아름다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였다.



궁궐 건축에서 건물 이름 끝에 붙는 명칭을 살펴보면, 건물의 형태, 성격, 지위에 따라 대략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 당, 각, 합, 재, 헌, 루, 정 이다

전은 왕과 왕비의 건물에만 사용되었고,

당은 왕이 정무를 보는 집과 왕세자의 정전같은 건물에 쓰였다.

각은 신하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그보다 중요도가 약간 낮으면 합이라 했다.

재는 서재 내지 사랑채의 성격을 지닌 집이고,

헌은 마루가 넓은 건물에 붙였으며,

루는 이층 건물이라는 뜻이다.

정은 정자인데

사다리나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이면 루라고 불렀다.



창경궁의 역사성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옛 건물들이 형체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침묵으로 증언한 바, 순조와 사도세자를 비롯해 많은 왕과 왕자가 여기서 태어났고, 인종의 즉위식과 봉림대군의 왕세자 즉위식이 있었으며, 중종과 소현세자를 비롯해 많은 왕과 왕자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드라마로 가장 많이 재현되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장희빈 사건이 모두 이곳 창경궁에서 일어났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숱한 궁중비사의 현장이다.


창경궁은 왕비와 왕대비의 생활공간으로서 궁궐의 권위보다는 사람사는 공간다운 인간미가 넘쳐흐른다.

실제로도 왕과 백성들, 신하들이 한데 어우러져 모였던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고도 한다.



흥화문과 외행각, 명정전, 문정전, 숭문당과 함인정, 경춘전과 환경전, 통명전과 양화당, 영춘헌과 집복헌, 내전터, 춘당지, 관덕정과 집춘문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명전전은 5대 궁궐의 정전중 현재까지 가장 오래 보존된 정전이라고 한다.

또한 부끄러운 역사였지만 그래도 역사의 한페이지였던 창경원 시절의 이야기도 전한다.

(나또한 초등학교 시절 창경원으로 소풍과 가족놀이를 다녀던 기억이 있어 일부분 수긍이 간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