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친밀함’과 낯섬을 상징하는 ‘이방인’ 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
두 단어는 소설 속에서 묘한 대칭이자 묘한 어울림, 그리고 이중적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누구보다도 친밀한 존재여야만 하는 (그렇게들 알고 있는) 남편, 아내, 부모가 실제는 낯설기만 한 ‘이방인’적 존재일 뿐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저 이방인 일 뿐이었던 존재에서 자신의 투영된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더 더 친밀한 감정을 가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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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지난여름 사이, 무엇인가가 변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텅 빈,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깊은 바다 밑바닥의 난파선, 그 안을 둥둥 떠다니는 부속물, 해수에 불어 형체를 잃고 미끄덩거리는 이끼류, 그것이 바로 자신인 것이다.
이야기는 '이유미(이유상)'의 이야기와 '나' 의 이야기가 병행구조로 이루어진다.
병행되는 이야기 구조이지만 두 이야기의 감정은 동일한 하나로 엮어져 있다.
나와 남편, 이유미와 진의 삶은 어느 순간 바다 아래 가라앉아 있는 난파선마냥 길을 잃고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그들의 삶은 소설 '난파선'의 주인공처럼 외형만 갖추어졌을 뿐 속은 텅빈 존재들일 뿐이다.
거짓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상
'이유미(이유상)'의 과거 추억을 회상하는 '나'.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던 학창시절, 가짜 대학생 생활, 사랑, 결혼약속, 헤어짐, 결혼과 이혼, 어머니의 죽음, 노숙생활, 그리고 마지막 진과의 사건을 쫓는 동안
그에 병행되는 '나'의 추억과 나의 현재는 이유미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
어쩌면 동일인이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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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반듯함이 나의 난잡함을 드러내고, 그의 여일함이 나의 광기를 불러내고, 그의 밝음이 나의 어둠을 일깨운 것은. 나는 그에게 포섭되는 대신 더 낮은 곳으로 추락했다. 외도는 그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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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을 하는 것은 노숙생활에 여러모로 편리했다. ~~~.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죄책감이나 후회 따위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녀가 품고 온 삶에 대한 증오,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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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사랑이 사라져버렸어. 아마 나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가 될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나봐. 예전에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어. 두려웠거든. 그래서 당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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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퍼 담기에 급급한 졸작이었다. 하지만 그 미수간 감상의 이면에는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검은 표지에 새겨진 새하얀 나선의 빛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그것은 받 밑에 잠긴 배 위에 매달린 돛의 음영, 혹은 버려진 책을 집어든 단 한 사람의 공감, 끝없이 실패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제로의 출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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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빛도 없는 검은 바다 밑에서, 좌초된 배에 매달린 돛이 눈부시게 하얗다.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한 듯, 부풀어오른 돛이 물결을 따라 휘날리고 있다.
심해의 하얀 돛처럼 그들을 자신의 삶으로 이끌어 준 것은,
타인에 대한 속임, 타인에 의한 속임을 당하는 행위들이었다.
자신의 삶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출발하기 위한 그들의 방법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속이지 못한, 그저 속아준 행위들에 불과하다.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함께 쾌락에 빠지는 것' 처럼...
그런데 이야기는 당황스럽게 결말에 다가선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믿었던 것은 혹시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의 재료가 혼합되어져 우리를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놓이게 한다.
매혹적인 삶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친밀함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낯설음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한 발 내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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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모든 게 희박해요. 공기도, 빛도, 소리도 형체를 가지지 못하고 뿌옇게 무리 지어 머물다 사라져버리죠.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도 점성이랄까 강도랄까, 그런 것들이 약해져서 풀어지고 주변으로 흡수되어버리는 거에요.
두려울 것 같아요.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감정조차도 흐릿해지거든요. 다만 무료할 뿐이에요.
혼자니까, 절망적으로, 끔찍하리만치 혼자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은 그 행위들을 통해 친밀하지만 낯선 무언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텅빈 자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런 삶의 익숙했던 무료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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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 폐허가 된 길목에서.
친밀하고 익숙한 관계에서 일상의 질서를 이루어 나가는 우리들 모두의 삶속에서 과연 그들 각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일상아래 숨어 있을 뿐,
아주 먼 이방인도, 가장 친밀한 사람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별(이혼) 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그 골목 너머의 샛길을 발견하고 길을 나서게 된다.
심해에 가라앉은 난파선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얀 돛을 달고 새로운 항해를 나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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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카페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모두 다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이혼과 헤어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가지게 되지만,
여전히 나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 같은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모두 ‘친밀한 이방인’ 일 뿐인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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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소설이 인생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나 자신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질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끌고 다녔던 그 일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그러자 내게 남은 것은 세상 아무것에나 심드렁한, 푹 퍼진 삼십대의 여자뿐이었다. 그 여자는 한때 자신에게 있었던 생기와 아름다움을 남편과 아이에게 빼앗겼다고 믿으며, 그들을 남몰래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 여자의 이름이고, 집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매일 그들을 죽이는 꿈을 꿨고, 한밤중에 일어나 잠든 그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안도했다. 그 여자는 삶이 이미 자기를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소설의 구성이기도 하지만
소설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의미를 묻는 장면은
마치 작가 스스로의 고민을 토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한아 작가님은 의미를 찾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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