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의 ‘친일파’에 대한 감정의 강도가 특별히 높은 것은 다른 구 식민지와 달리 한국은 후발 주자인 일본에 의해 비교적 늦게 식민화를 당한 만큼 이미 근대적인 민족주의의 근본틀이 어느 정도 잡혔다는 것이다.
구한말 지식인 입장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자강의 기회를 빼앗아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약자 한국을 수탁하는 강적, 세계적 생존 전투에서의 치명적인 경쟁자였던 것이다. 근대적인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강적에게 복종하는 것은 바로 민족적 죽음, 즉 멸종의 시초다.
일본에 의한 한국의 강제병합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동등한 민족국가에 의한 ‘점령’으로만 보인다. 그러기에 대다수 구 식민지와 달리 일본이 단순한 ‘정복 왕조’가 아닌 ‘적대 민족’으로 보이는 것이고, 친일은 ‘민족 반역’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친일파는 전시 파쇼화에 앞장선 데다가 이후에는 친미파로 둔갑하면서도 파쇼적 탄압과 학살에 대한 그 선호를 전혀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증오는 다른 나라보다 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친일파 자체도 그렇지만 친일파가 매개가 되어서 굳어져 버린 권위주의적이며 전근대적 개인의 신체 예속의 요소가 강한 문화도 그렇다. 그러한 친일파 풍토속에서는 일상적 폭력의 제도화에 앞장섰던 친일군인이나 친일 교육자들은 당연히 ‘악의 근원’일 수 밖에 없다.
대학영어 상용화는 국제 표준화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 광풍처럼 몰아친 TOEIC 열풍. 그리고 그 이후에 또다시 몰아친 대학교에서의 영어강의 열풍들. 이러한 영어의 공용화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국제화 하는 것일까? 대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세계 최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언어인 ‘국어’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세계 최고의 언어라고 자부하면서도 우리는 그 언어를 사용하면 국제화 되지 못하고 세계화 되지 못한다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국가의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국어로 강의를 하고, 우리의 국어로 학문을 연구하고, 우리의 국어로 연구결과를 기록하고, 그러한 지식을 국제화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한다. 우리 국어의 사용을 강화하고 지식을 축적해 나갈수록 우리 국어를 사용하는 세계인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우리로부터 진정한 국제화이고 세계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외모로, 명함에 적힌 몇 글자의 직위와 몇 글자의 회사이름으로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포장한다. 그러한 인식들이 쌓여 결국 이제는 우리나라의 한축으로 자리잡았음을 인정해야 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차별의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의상과 외모의 균일화로 인한 집단의식은 결국 피부색과 인종으로 우리와 우리외의 사람을 구분하고 마는 극단적 인종주의, 민족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내밀 명함이 없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명함에 ‘장’이나 ‘사’자에 ‘알만한’ 조직 이름의 몇 글자를 쓰기 위해서 ‘대한 남아’는 결국 독립적 인간인 자신을 ‘성공’의 제물로 삼아야만 한다.
의상이나 외모가 내면적인 ‘나’의 표현인 만큼 의상과 외보의 균일화는 집단에의 무조건 항복과 함몰을 가장 강력하게 상징한다.
과거 신라, 백제, 고려에서 이민족을 당당히 하나의 주체로서 인종하고 우리안에 포용했던 그 자신감을 지금의 현실에서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폐쇄적인 세계화가 아닌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를 확장시켜 나가는 진정한 세계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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