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가 엮음
문득 사람이 그린운 날에 읽게 되는 시....
시를 접하는게 점점 쉽지 않고,
소설책이나 인문학책, 자기계발서에 밀린진도 오래다.
하지만, 함축적인 한 단어 한단어에서
느껴지는 절절함은 다른 종류의 책들이 주지못하는 기쁨을 준다
당신, 잘 지내나요?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
내 곂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라는 감성구분속에 박광수가 좋아하는 시들을 엮어놓는다.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 - 양애경 -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 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이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지내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 이정하 -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해수관음에게 - 홍사성 -
당신 보면 하고 싶은 말 오직 한마디
오래도록 안고 싶다
찬 돌에 온기 돌 때까지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끊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히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조용한 일 - 김사인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살다가 보면 - 이근배 -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따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 - 손택수 -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잆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칙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보면 김칫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사랑 - 안도현 -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강제윤 -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그리움을 견디고 사랑을 참아
보고 싶은 마음, 병이 된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어찌 그리움이겠느냐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을 때는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우리 사랑은 몇 천 년을 참아 왔느냐
참다가 병이 되고 사랑하다 죽어버린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느냐
사랑의 독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죽음이 아니겠느냐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말하지 마라
사랑은 살아지는 것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머지 않아 그리움의 때가 오리라
사랑의 날들이 오리라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어쩌다 접하게 된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높고 푸른 사다리 (0) | 2015.07.20 |
---|---|
음모론의 시대 (0) | 2015.06.24 |
흐르는 시간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들 (0) | 2015.06.18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0) | 2015.05.30 |
뿌리 이야기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0) | 2015.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