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기타

바냐삼촌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4. 6. 6.

6월의 안똔체홉 장극은 "바냐삼촌" 이네요.
1달이 체 안된 것 같은데 극장 밖 안내포스터들이 모두 새로 바뀌었네요.
6월 부터의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기대됩니다.
특히나 "바냐삼촌"은 처음 관람하게 되는 작품이라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펼쳐나갈지....

전부터 느끼던 생각이지만
안똔체홉극장의 야외와 실내가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여러 희곡집들도 정리되어서 인지 더 깔끔해 보이구요.

검은 옷의 수도사를 배경으로 서 있는 조그만 안똔체홉흉상 피규어가 귀엽네요

 
이번 "바냐삼촌"의 캐스트들은 의외로 낮설은 배우님들이 눈에 띄네요.
새로운 작품만큼이나 새로운 배우님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태균 (세례브랴꼬프 교수 역), 이음 (옐레나 역), 장희수 (소냐 역), 조환 (바냐삼촌 역), 김진근 (닥터 아스뜨롭 역), 박장용 (뗄레긴 역), 김용학 (바이닛츠끼 역), 조경미 (마리나 유모 역), 이찬웅 (일꾼 에핌 역) 배우님들이 나오시네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해 주는 연기를 해주셨던 조환 배우님은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이상의 열연을 보여주십니다.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진근 배우님 연기는 처음 보게 되었는데요. 목소리 톤과 발성, 그리고 움직임까지....."아, 좋다~~~"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장희수 배우님은 제가 보아 온 동안은 작은 역할 중심의 배역이었는데, 이번에는 큰 의미의 배역을 맡아주셨네요.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이 서서히 익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이음 배우님 또한 처음 접하게 된 배우님인데,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놀라게 됩니다. (이쁨은 덤이요~~~)
※영화 불멸의 여자에 나오셨던 걸 늦게 알게 됨

아무튼 안똔체홉극장의 공연에 참여하시는 배우님들의 연기는 좋은 분들이 많음을 또다시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도 3시간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니, 문득 1년여 전 배우님들의 연기에 놀라 연간 회원권을 사게 되었던 그때의 그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제가 보아온 안똔체홉극장 작품들 중 가장 무대장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문공간을 통해 야외와 실내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구요.
(소품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듯...)

스토리

정년퇴임한 유명교수는 젊은 두 번째 부인 옐레나와 함께 그의 시골 영지에 요양차 내려온다
그곳은 전처 장모와 처남인 바냐, 그리고 교수의 딸인 쏘냐가 성실하게 영지관리를 해왔다.
식구들의 배려에 교수는 그리 고마워하지 않으며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이며 민감하다.
통풍치료를 위해 의사 아스뜨롭을 불렀지만 무시하며 진료를 받지 않는다.
옐레나의 세련됨과 미모는 그 시골남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는 존재이다. 아스뜨롭과 바냐는 둘 다 옐레나를 향한 사랑에 빠지게 되나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는 동안 쏘냐는 아스뜨롭을 짝사랑하는 아픔을 겪는다.
교수는 영지를 팔고 은행이자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하지만 바냐는 그간의 배신감으로 인해 어떠한 이유에선지 그에게 총을 쏘아버리는데...


 

전훈 연출님의 배역에 대한 설명을 보니, 배역들의 의미가 작품 전체적인 맥락과 연결이 된다.
 
세례브랴꼬프 교수는 영어식으로는 "알렉산더 실버 Alexander Silver "
은으로 치장한 알렉산더 대왕으로 이름만큼이나 작품에서도 절대권력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그의 실제적인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마흔이 넘도록 시골에서 장가도 못가고 농사만 짓고, 짝사랑에 빠졌다 괴로워하는 바냐의 풀네임은 이반 뻬뜨로비치 바이닛츠끼이다.
순박하고 인간이 한 여자를 짝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평생 살아 온 삶을 후회하면서. 시기와 질투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차 독설을 내뿜는 사람으로 변한 바냐.
바이닛츠끼는 바이나война(전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배역과 연결해 보면 항상 전쟁중인 사람으로 극중에서도 현실과 우울증사이에서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는 상징이 돈다.
 
그리스 신화의 옐레나(= 헬렌) 은 출중한 미모로 인하여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여자이다. 바냐삼촌이라는 작품에서도 가정과 사람관계의 파탄은 그녀가 원인이 된다
 
쏘냐는 현명하다는 뜻이라는데, 그만큼이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가족과 사람들의 관계들이 원만하기를 원하며 행동한다.
 
인간은 결론적으로는 모두 자신의 욕망안에서 사는 속물일 수 밖에 없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도덕적인 척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

의사 아스뜨롭은

인간이란 모두 아름다워야 합니다. 모습도, 마음도, 생각도

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강도짓이나 화재가 아니라 미움이나 증오, 사소한 말다툼 같은 것들이잖아요.

 
라고 말하던 옐레나의 말처럼 시기심과 미움으로 관계들은 파괴되어 집니다.
 
다른 안똔체홉의 작품들처럼
절대적 권력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해가는 지배계급 지식인,
몰락한 지주계급, 
쉼없이 일하다가 이제는 지쳐버린 사람들,
그리고 그저 삶이 평온한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유모.
 
평온과 시기, 질투, 증오, 파괴의 간극 사이들
해체되어진 서로의 관계 속에서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들.
 
쏘냐는 말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일에 정진하면서 살다가, 살아내다 보면 곧 편히 쉬게 될 것이다

 
어느 덧 서재에 남은 바냐와 소냐,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극은 마무리 됩니다.
이또한 안똔체홉의 전형적인 결론대로 입니다.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의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희망은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