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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기타

숲귀신 - 젊은 체홉의 대실패작 이라고?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4. 7. 20.

안똔체홉의 "바냐삼촌"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작품에 대한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없었는데요.

이곳 안똔체홉극장에서 8대 장막전 중 하나로 진행되는 작품이 바로 "바냐삼촌"의 모태가 되었던 "숲귀신"이라는 작품입니다.


출판, 공연금지령으로 인해 숨겨진 작품을 만나다.

 

체홉이 단편소설 작가로 유명했던 20대 후반에 이 작품 탈고 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상연되었지만 연극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혹독한 비평에 시달렸다.

막은 금방 내려졌고 상심한 그는 이 작품에 대하여 공연금지는 물론이고 출판금지까지 단행한다.

1년 후 그는 유형지인 사할린 섬으로 7개월여의 긴 여행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밑바닥 사람들의 삶과 유배된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며 또한 본직인 의료봉사활동도 겸하였다.

그 후 그의 작품 세계에는 깊이와 철학이 정리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실패로 이 작품을 개작한 "바냐삼촌"이 탄생되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완성도에서 4대 장막과 비교되어 소외된 작품이지만 그가 20대에 단편소설에서 보여주었던 파스(farce)적인 요소와 풍자(satire)적인 요소가 풍부한 이 작품은 심도깊은 후기의 4대 장막과는 달리 한층 더 대중적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판단이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팝콘무비 등이 이러한 요소(캐릭터 및 플롯)을 차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냐삼촌 때보다 훨씬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네요.

그래서인지 일부 배역은 더블 캐스팅이네요

오늘의 캐스트는 

이강원 (세례브랴꼬프 역), 이음 (옐레나 역), 김미리내 (소냐 역), 조환 (이고르 역), 염인섭 (흐루쇼프 역), 박장용 (쟈진 역), 정정자 (마리아 역), 김원경 (졸뚜힌 역), 김세윤 (율랴 역), 유경열 (이반 역), 조희제 (효도르 역), 나신영 (바실리 역) 배우님들입니다.

 

믿고 보는 "조환" 배우님은 여전히 바냐삼촌에서처럼 나오시구요.

최근에는 "이음" 배우님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작년 시라노 공연에서 인상깊게 뵈었던 "김미리내" 배우님도 오래간만에 나오시네요. 반갑습니다 ~~~^^

<안똔체홉학회 페이스북 발췌>

 

인간의 파괴본능과 인간성의 회복을 외친 젊은 체홉의 혈작

 

사건은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어느 시골 영지에서 시작된다.

퇴임한 아주 유명한 교수는 젊은 두 번째 아내와 함께 이 영지로 쉬러온다.

이곳은 죽은 전처 딸 쏘냐의 명의로 되어있고 장모와 처남인 이고르도 살고 있다.

처남은 교수의 두 번째 아내, 옐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또한 그 지역의 젊은 남성들 주변으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다.

마을에는 안좋은 소문이 퍼지고 두 번째 아내는 자기의 의도완 상관없이 부정한 여자로 의혹받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곳에서 숲을 지키는 의사 흐루쇼프는 인간이 숲도 파괴하고, 인간도 파괴한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외친다.

한편 교수는 이윤이 없는 애물단지인 영지를 팔아버리자고 제안하자 평생 이 영지를 가꾸어 온 이고르는 배신감과 함께 괴로움을 참다 못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마을은 이고르의 자살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나고, 옐레나는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로 인해 어느 오두막에 숨어 지내다가 결국에는 모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화해를 시도하고 시골의 삶은 계속된다.


"바냐삼촌" 과 "숲귀신"에는 동일 인물뿐만 아니라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세례브랴꼬프와 옐레나, 소냐는 이름까지 똑같이 등장한다옐레나를 짝사랑하는 바냐는 이고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의사이면서 산림파괴를 막으려 동분서주해 숲귀신이란 별명을 지닌 흐루쇼프는 바냐삼촌의 아스토르프와 비슷합니다.

반면 바냐삼촌에서의 소냐와 숲귀신의 소냐는 이름은 동일하지만 독립성이나 캐릭터면에서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냐삼촌에서의 바냐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숲귀신의 이고르는 자살로서 삶을 마감합니다

 

초연에서 대실패를 했다고 하는데, 전훈 연출께서 제대로 각색을 해서일까요? 아니면 배우분들의 연기가 좋아서 일까요?

작품은 "바냐삼촌"보다 훨씬 짜임새있고, 인과관계도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바냐삼촌이 안똔체홉의 주제의식들과 일맥상통하는 흐름이라면 "숲귀신"은 사랑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까요.

코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똔체홉답게, 등장인물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극은 여전히 가볍게 진행됩니다.

 

아래는 안똔체홉학회 카페에서 작품의 의도를 정확히 짚었다고 추천하는 리뷰입니다.

제가 느끼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있네요

 

< 극장 안에서 증명된 질량 보존의 법칙 - 김혜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