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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기타

베키 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3. 11. 11.

여러 연극전들을 오며가며 들어본 거 같은데 기억연극전은 조금은 낯선 연극전이네요.
기간차이를 두고 "문 밖에서", "베키샤", "네잎클로버", "낯선 연인" 이라는 4개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억연극전에 대한 의도가 리플렛 위 오래전 카세트 테이프 A면의 문구에 인상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것,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
연극으로 기억하다


 

오늘 공연은
제6회 동국 연출가전 참가작 이자 제2호 기억연극전 선정작인 "베키 샤 (BECKY SHAW)" 입니다
평일 19:30 에 시작하는 연극,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무대임에도 러닝타임 180분의 장편입니다.
소극장공연의 페러다임을 바꾼 고품격 명작이라고 홍보되고 있는데,
다른 분의 추천도 있고해서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작가는 "지나 지온프리드"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써 놨다고 하는데,
공연을 보면 볼 수록 5명의 캐릭터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나쁘거나, 미쳤거나, 가치가 없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어떤 인물도 고쳐지지 못할 만큼 고장났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오늘 캐스팅은
이안(맥스  역), 이수현 (수지, 수잔나 역), 오늘(수잔 역), 김석환(앤드류 역), 이음(베키샤 역) 배우님께서 열연을 펼치시네요.
(진짜 진짜 열연입니다)
사실 배역마다 원캐스팅이니 굉장한 에너지를 쓰고 계신 배우님들!!!
그만큼 대체할 수 없는 비교불가 연기일수도 있을 듯 합니다.
 
배우들마다 자기 배역의 대사중 명대사를 하나씩 뽑아서 같이 표시해 두었네요.
음....
역시 제가 느꼈던 대사의 느낌과 배우님들이 느꼈던 대사의 느낌이 다른 것도 있네요

 
무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촐합니다.
무대장치의 세팅이랄 것도 많이 없습니다.
방의 문과 의자들...그리고 무대 뒤편의 프로젝터 스크린
그런데 실제로 공연내내 이 정도의 무대장치만으로도 극이 전개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무대세팅을 최소화 했기 때문에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또한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개 종류의 티켓과 기억연극전 리플렛을 입장때 받을 수 있는데요
"베키 샤" 자체의 티켓과 "기억연극전" 티켓으로 구분되어서 티켓이 있네요

< 시놉시스 >

 
리차드가 죽었다.
리차드의 장례식 이후, 리차드의 아내 수잔과 심리학 박사과정 중인 딸 수잔나는 맥스의 부탁으로 뉴욕에 오게 된다.
수잔의 입양된 아들 맥스는 성공한 자산관리자로 리차드의 재산분배에 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수잔과 수잔나를 뉴욕의 호텔로 모신다. 하지만 수잔이 어린 남자친구 레이스터를 데려오며 상황이 급변한다.
 
수잔은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화를 낸 뒤 떠너버리고, 수잔나는 아버지의 상실감에 고통을 호소한다.
수잔나를 위로하던 맥스는 수잔나와 키스하게 되고, 관계가 변할 걸 걱정하는 수잔나를 안심시키면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된다.
 
8개월 뒤,
맥스가 아닌 앤드류와 결혼한 수잔나는 맥스에게 베키를 소개시켜준다.
그리고 넷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숨막히는 연기와 극 전개에 몰입하는 사이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15분이 주어집니다.

 

이안 배우와 이수현 배우의 숨돌릴틈 없는 대사와 함께 연극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간의 통상적인 사랑이야기 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시간이 되는 극의 진행 속에는
그저 단순한 반전, 맹목적인 사랑, 아픔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중간중간 유머도 녹아져 있구요.
 
5명의 배우가 연기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서로 자신의 주장들을 이야기 하며 반목하지만 과연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랑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주장들이 펼쳐지지만
사랑 외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 신뢰,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누가 이용하고 누가 이용당하는 것일까요?), 가족이라는 관계와 의미...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어지지 않는 연출과 대사 속에서 배역들의 심리를 읽어나가는 것은 이 연극이 가진 가장 큰 재미인 것 같습니다.
 
맥스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적인 사랑을...

이안(맥스 역)

우린 동물이야.
사랑은 그냥 느낌이라고,
배고프거나 추위를 느끼는 것과 같아.


베키샤는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치있는 사랑을,,,

이음(베키샤 역)

그게 사랑이에요. 안 그래요?
뭐든 가치 있는 건
상처 없이 얻을 수 없어요


 
사랑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사람을 포장해서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을 경고하는 앤드류도 있습니다.

김석환(앤드류 역)

그들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이 좋은 사람이 될 순 없어.


 
그리고 수잔나는 첫 남자로서의 오빠를 지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수잔나에게는 셋째 주 토요일이 무슨 의미에서 중요한 것일까요? 맥스와의 첫 관계의 그 밤일까요?)

이수현(수잔나 역)

오늘이 토요일이야. 맞지? 셋째 주 토요일인가?
오빠를 지우고 싶지 않아.


저는 수잔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선량하고 도덕적이며, 정의롭다고 생각해 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또한 올바르고 정답인, 나와 다른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해 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수잔은 말합니다,
우리는 먼저 감옥에 가야한다고...
과연 그것이 구치소에 있는 애인을 면회한다는 의미일까요?

오늘(수잔 역)

내가 환상적인 저녁과 최고급 와인을 살게요.
하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는 감옥에 가야만 해요


 

제목은 "베키 샤" 인데 극중 비중은 맥스와 수잔나가 훨씬 많은 상황.
왜 연극이 제목이 "베키 샤"일까 하는 궁금증.
그건 아마도 "베키 샤"의 등장으로 부터 맥스, 수잔나, 앤드류의 관계속 간극들이 더 벌어지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베키 샤를 둘러싼 상황에서 부터 사랑에 대한, 신뢰, 믿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이 엉퀴고 틀어진 모습들을 보이니까요?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출발점이라서가 아닐까요?
 
연극은 180분간 수많은 대사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감정의 반전과 변화들이 얼키고 설킵니다.
그 과정은 순전히 배우들의 몫입니다.
마이크의 도움없이 배우들의 순수 육성으로 전달되는 되는 감정선들은 저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이안 배우, 이수현 배우의 핏대선 목소리, 혈관이 터질 듯한 얼굴표정 변화, 움켜진 손, 손가락의 움직임 등등
180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네요.
오히려 시간이 조금 더 길더라도 이해하지 못했던 대사들의 의미를 알아냈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습니다.
오늘 배우도 초반의 강렬한 딕션으로 인생에 남으시더니, (중간 등장이 없어 이대로 끝나신 건가 했는데)
극 후반에는 극을 절정으로 몰아가는 연기를 휘몰아쳐 하시네요.
다른 배우님들도 감정의 굴곡들을 참 멋지게 연기해 내십니다.

극장 "봄"은 한성대입구역 쪽에 있습니다.
대학로를 벗어난 삼선교쪽에도 소극장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성북구에서의 공연관람은 첫 번째네요.
"봄"은 보다는 의미일까요? 연극계에도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의미일까요?
공연장 간판은 쉽게 눈에 띄지 않네요. 심지어는 운동하느라 거의 매일 다니는 길에 있는데도요.
(제 눈썰미는 역시나 꽝이네요)
그래도 신경써서 찾아가보니 익숙한 장소에 있어서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지하 매표소를 지나니 같은 지하층의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 특이합니다.
작품 설명과 캐스트보드도 벽면을 활용해 프린트물로...
깔끔한 입구를 지나니..

공연장 가는 길은 어둠의 길입니다.
가로등 처럼 길을 밝혀주는 조명을 따라 공연장으로 gogo.
좌석은 불편한 편이에요.
예전 대학로에서 운영되던 소극장느낌 그대로 입니다. (요즘은 좌석이나 의자들이 많아진 대학로 공연장의 이전버전 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180분의 공연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연기력이라면 문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