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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7. 7. 16.

아직 보노보노 원작을 보지 않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의 일상속 고민들에 대해

보노보노의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찾는다.


길다면 길수도, 짧다면 짧을수도 있는 삶이지만

살아간다는 것에는 

많은 고민과 슬픔과 괴로움과 눈물과 아픔들이 숨어 있다

많은 기쁨과 행복들이 숨어 있다.


 

이 책에는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보노보노, 보노보노의 아빠

너부리, 포로리, 야옹이 형이 등장한다.


 

인생은 꿈을 쫓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과연 꿈이 무엇인지 확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져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조금은 나태해지고 하고,

일상에 지치기도 하고, 만족하기도 하고

가족을 꾸려가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무게를 느끼기도 하지 않을까?

일상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소소한 하루가 즐겁기도 하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인 말이 있을까.

이 말은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괴상한 믿음을 심어준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칭찬받고, 가능성을 무한히 응원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는 부모처럼 칭찬과 응원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이는 좌절 앞에서 '나는 잘할 수 있어!'하고 스스로 희망을 갖다가도 좌절이 자꾸 반복되면 '나 잘 못하나?' 하고 의심하고,, 결국은 '나 별거 아니었네! 근데 왜 칭찬만 했어!'라며 원만하게 된다.

 

 

누군가라는 존재, 무언가라는 존재.

결코 사라질수는 없는 인연과 삶의 흔적들

 

그래, 있다는 건 작아지긴 했지만 없어지진 않았단 거야.

세상은 모든 이의 메모투성이 같아

  

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할 수 있겠?

 

그래, 우리가 떠들고, 어울리고, 무리지어 생활하는 것은

모두들 쓸쓸하기 때문에

쓸쓸함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을 숨기기 위함 일런지도 모르겠다 


다들 쓸쓸하다구. 다들 쓸쓸하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고

 

화를 내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내 것'이 뭔지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하는 거라고.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고 싶을 때마다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을 들은 보노보노는 자기가 화낼 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줄 아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얼마나 잊은 채 살아왔는지가 느껴져 멋쩍어지는 밤이다.


 

인간의 노동력을 환산한 값이 월급이라고 하지만 과연 월급에 노동력만 들어 있을까.

마음에 안 드는 후배도 참고 넘기는 인내심, 상사의 썰렁한 유머에도 웃어주는 서비스 정신, 할 줄 아는게 없어도 할 줄 아는 게 많아도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깨달음, 나만 회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회사도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는 반전......

이 모든 것 한 달치 분량을 꾹꾹 눌러 담은 게 월급 아닌가.

특히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지구력이라는 사실은 쓰라리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다.

 

 

인생에서

이기는 건 뭐고

지는 건 뭘까


 

무언가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

다들 분명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겠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뭐랄까.

장히 부지런한 거 아닐까? 


그러게

내가 남들보다 게으른게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부지런한게 아니라

각자는 각자의 속도대로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게 아닐까

 

 

솔직해지는 순간

세상은 조금 변한다.


너도 솔직해 보라고...
너부터 말이야



 

상처는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음 상하고 나서 "나 상처받았어"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사람 역시 상처받을 수 있다.

그래서 관계인 거다. 관계는 두 사람이 만드는 건데 왜 상처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늘 한 사람일까.

상처를 주고도 상처받을 수 있다.

상처를 받고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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