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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 이기주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0. 8. 27.

이기주 작가님의 앤솔로지

앤솔로지는 ‘작가의 작품을 다시 수록한 작품선’ 정도의 의미라고 하는데, 이기주 작가의 작품 중에서 엄선된 글들이라고 이해하면 되려나?

난 이기주 작가님은 처음 접하게 되니 내게 있어서는 앤솔로지는 아닌 셈이다.

 

기자출신의 작가라서인지 글이 간결하면서도 일상속 사소한 단어들을 통해 따뜻한 울림을 내게 전해준다.

부모의 시간을 공유해 쓴 자식이,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부모와 공유하는 사랑의 느낌이 ,

남녀 간의 사랑의 느낌이,

이별과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먹먹함이,

자식에게 나의 것을 내어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하는 부모의 느낌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로새겨져 있다

 

책의 첫 장 속 작가와 어머니의 대화가

병원에 모시고 올 때 마다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과 너무나 똑같아 울컥 밀려드는 눈물을 무방비로 맞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서로에게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

공유의 시간이 누군가와는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반면

누군가와는 아깝기 만한 소비와 공유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살아가는 것, 사람이 서로 어우러진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상대의 시간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을 공유하는 관계

 

살다 보면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일정 부분 뒤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부모가 어느새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돌봄을 받기만 하던 자식이 반대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시기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 몇 해 전 가을이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여러 검사를 받느라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진료를 마친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병원동에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몇 분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한 헛기침을 해대며 질문을 건넸다.

"흠흠. 날도 선선한데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나 먹고 갈까요?"

어머니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내가 네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같구나..."

어머니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시간'이란 단어가 귓속으로 스며들어 쉴 새 없이 맴돌았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들릴 듯 말 듯 "시간..." 이라고 웅얼거렸다. 차를 몰아 이동하는 내내 어머니의 말을 곱씹었다. 시간과 사랑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특히 사랑은, 내 시간을 상대에게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이 내 일상에 침입해 시간을 훔쳐 달아나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이라는 감정과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사과에 '하지만'이 스며드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은 증발한다.

언젠가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을 들여다본 적 있다. 그는 어딘지 힘겨워 보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일까. 엉뚱한 얘기지만 영어 단어 'sorry'의 어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에는 사랑이 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람은 물론이고 세상과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어요. 가만 보면 나는 살고 싶어서 부단히 사랑을 하려 했던 것 같아요. 살고 싶어서..."

 


마지막

 

'마지막'은 '아버지' 와 '어머니'처럼 굳이 소리 내 발음하지 않아도 괜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단어다. 인생은 유한하고 모든 일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이를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삶의 끄트머리에 걸터앉는 순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씁쓸한 체념과 함께 찡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그리움은 서서히 기억으로 옮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거짓말

 

비 오는 날, 어린 자녀와 부모가

우산을 맞잡은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

부모라는 존재의 역할과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녀가 어린 경우 웬만한 부모는 아들딸이 비 맞지 않도록 우산을 자식 쪽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빠 옷 젖었어?"

"아니..."

거깃말이다. 부모의 한쪽 어깨는 이미 흠뻑 젖어 있다.

자식이 세상 풍파를 겪을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축축한 옷은 납처럼 무거워진다.

그러는 사이 부모는 우산 밖으로 밀려난다.

조금씩 조금씩, 어쩔 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