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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 김수현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0. 8. 28.

다른 이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어떨지,

나의 발버둥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심에 애쓰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노력하고 살아온 삶에 노력부족이라는 말을 스스로 덧씌운다.

 

열심히 살아왔어! 고생했어!

그 말 한마디를 나에게 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북 치고 장구 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만큼,

때론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실망시킬 용기도 필요하다.

 


평범했던 날들은 사실은 눈부셨고,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으며,

착한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고,

 

당신은 충분히 잘 살아왔다.

 


고정된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쏟아내는

개인을 향한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정의,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이다

설사 그 비난들이 변화를 만들지라도,

억압으로 생긴 변화는 언제나 우리를 불행하게 했다.

 


우리는 때때로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왜 나만 이렇게 상처를 안은 채 살아야 할까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은 불행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불행을 숨기고,

상처가 클수록 상처를 감춘다.

그래서 다른 이의 아픔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만 상처가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말 못 할 이야기를 품고,

조금씩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며,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상처 입은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상처받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통해 삶을 바라볼 뿐,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다만 신념이 경직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맹목적인 믿음이 때론 사이비 종교 신도를 만들기에

오랜 세월 마음에 심어진 '이게 옳다'는 신념에도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믿는 삶의 관점이 유일한 진리는 아닐 수 있고,

몇 번을 검증한 신념에도 오류는 존재할 수 있으며,

가치관 역시 필요하면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방식으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반복되는 충돌이 생겨난다면

설득될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