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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기타

상실과 기호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4. 1. 21.

소극장 "공유"에서는 실험극적인 다양한 작품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여럿 선을 보이곤 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작품일까요?

출퇴근길에 보던 소극장 "공유"에서는 한동안 공연준비 중이었는지, 공연알림이 없었네요.

오늘 "공유"에서 보게 될 공연은 극단 만추와 책갈피 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되어진
"상실과 기호"

3일간의 짤막한 기간동안 진행되어지네요.

 

3일간의 공연에 출연할 배우는

박지연 (나 역), 정희중 (모서리 역), 이준 (좌측 역), 구희우 (우측 역) 배우님들께서 활용해 주십니다.

어딘가에서 본듯한 배우님들인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이놈의 기억력이란 건 이제는 못 믿을 듯 합니다.

 

극장에 들어 앉으니

물 속인듯한 소리들이 나지막히 울립니다.

심연의 소리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비닐로 된 3면의 벽을 배경으로 단촐한 상자들이 무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측이 자리할 무대 우측의 나무는 무엇일까 했는데, 알고 보니 낚시대이더군요.

시놉시스

 

'나'는 어느 날 어딘지 모를 미지의 공간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 똑같이 갇힌 다른 이들을 마주한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나'는 '우측'과 '좌측' 그리고 '모서리'와 함께

이 공간의 여부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연출의도

 

본 작품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

더 깊숙하게는 '올바른 움직임'에 관한 고찰이다.

 

경쟁을 지나치게 유도하는 피로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움직임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그 이면의 것들을 모두 외면하면서 말이다.

 

극중의 '나'는, 역할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를 대상으로 접목 시킨 인물이다.

이를 통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힘과 방향성을 내재적으로 표현하여 설득하려고 한다.


공연은 약 50분 정도 진행된다.

알 수 없는 공간

감시자의 존재를 느끼지만 감시자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공간.

그들 4명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무언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갑자기 갇혀버린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방향성을...

 

그런데 이상하다.

공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그들이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상대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그 공간에는 이미 잘 유지된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좌측, 우측, 모서리, 그리고 이제 그 공간에 합류한 "나"

그렇다면 "나"는 중앙일까?

하지만 공연내내 그들은 "중앙"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중앙"이 되었던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지의 공간속에 존재하는 "질서"에도 그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그 질서에 순응할 뿐이다.

 

내일이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그렇기에 그 희망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현재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런데 극이 전개될 수록 우리는 알게 된다.

이 공간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안의 4명은 그저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미 거대한 존재에 의해 형성되어진 질서는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곳에 적용되어 진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세상속의 우리는 내일의 희망보다는 오늘의 상실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4명의 배우는 그 상실감을, 혼란을, 무력함과 패배감을 실감나게 연기해낸다.

짧은 시간의 흐름 속에 그들의 감정이, 상황이 감정이입되어져 내게로 옮겨져 온다.

기존의 질서, 경제적, 사회적 계급체계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통화할 수 없는 고장난 전화기에 자신의 희망을 말하고, 무작정의 기다림을 품는 시간...

그리고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나"가 듣게 된 전화기 너머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가야할 어떤 방향, 어떤 행동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