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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기타

잉여인간 이바노프 - 체홉의 가장 유치한 희곡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4. 2. 15.

드디어 2024년 체홉의 장편시리즈 관람하기 시작.

오늘은 "잉여인간 이바노프". 

다시 찾은 안똔체홉극장앞 마당에는 체홉의 흉상이 세워져 있네요.

여러가지 물건들로 채워진 앞마당은 작년에 안똔체홉극장을 처음 마주한 느낌과 사뭇 달라진 모습들이네요.

 

체홉의 가장 유치한 희곡 '이바노프'


<이바노프>는 1887년, 작가의 나이 27세에 한 극장장의 의뢰로 단 열흘만에 완성한 희곡이다. 모스크바의 아브라모프 극장에서 개막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 같지 않다고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그간 체홉의 4대장막에 가려져 계속 저평가 되어오다가 현대사회에우울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대두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2012년에는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뉴욕의 클래식 스테이지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미권에서는 ‘체홉식 햄릿’이라고도 한다.
이번 공연에 사용한 번역본은 공연의 결과물을 위해 줄기와 뿌리는 유지한 채 재탄생 된 “전훈의 디렉터 컷”이다.
3시간이 넘는 원작에 늘어지는 부분을 2시간 40분대로 다듬어 타이트한 긴장을 주었으며, 한국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편집하여 공감대를 형성했다.
프로덕션디자인은 고증보다는 빈티지 감성에 가까운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잉여인간 이바노프>로 명명한다.
부제 “인간은 인간에 의해 고독하다”


오늘의 캐스팅은... 

염인섭 (이바노프 역), 김혜연 (안나 역), 이주환 (레베제프 의장 역), 조경미 (의장 부인 역), 김인수 (샤벨스끼 백작 역), 한소진 (싸샤 역),  이시향 (마르파 역),  강희만 (보르낀 역), 정승현 (을보프 역), 장희수 (아브도챠 역), 박준호 (꼬식흐 역)

익숙한 얼굴의 배우분들이 꽤 많이 등장하시네요.

극의 관계도가 한 눈에 볼수 있도록 정리되어서, 원작의 관계와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여전하네요.

오늘도 공연당일 점심때가 되어서 예매확정 매일이 옵니다

안똔체홉 8대 장막전 이라는 타이틀이 선명하네요

올 한해의 공연이 기대됩니다

"누가 이바노프를 죽였는가?" 라는 자극적인 문구는 

이 장편의 연극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무언의 압박감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2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공연시간은 그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기에 그러한 감정이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극을 관람하면서도 여전히 B급 장난질이 난무한 현실을 투영한 작품 같은 느낌과 이바노프의 무력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운조차도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단순한 구조지만 가장 복잡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라고 하지만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단순한 현실을 복잡한 사회구조처럼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거운 부조리를 희곡적 상황과 버무려 전개해 나가네요

극의 종결은 비극이지만.

 

이바노프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은 목소리, 움직임 하나하나에 드러납니다.

잉여라는 것은 남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으로 공간이 비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하얀 배경의 무대, 화려하지 않고 간소한 무대소품들은 그 자체로 이바노프의 공허함, 빈 상태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이바노프는 말합니다. 

온 열정을 다해 마을을 위해, 조직을 위해, 자신을 위해 열정적이었던 그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 이상을 사용해 버리고 어느 순간 배터리가 방전되듯 모든 것에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고 자신을 한탄합니다.

자신이 왜 무기력한 잉여인간이 되었는지...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이제는 더이상 제구실을 할 수 없는 잉여인간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모든 것에 쓸모없는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활기차고 열정가득한 모습들을 보입니다.

물론 그것이 사기꾼스럽기도 하고, 돈과 명예만을 추종하기도 하고, 비정상적 헌신과 이상향에 대한 극단적 동경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을 압축해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잉여인간이란 무엇일까?

그저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잉여인간일까?

그렇다면 잉여인간은 애초부터 잉여인간이었을까?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이 잉여인간이라면,

불공정하고 위선에 가득찬 삶을 살아가며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은 잉여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

모든 것을 다해 노력하고 무언가를 이루고 헌신한 후 (목표를 달성한 후) 찾아오는 공허함에 맞닥뜨린 인간을 잉여인간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제는 성공한 사람이, 오늘은 잉여인간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사회가 그대로 보여집니다.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자신의 능력치를 다한 잉여인간은 사라집니다

 

희곡적 요소와 고뇌하는 모습, 무기력함, 자살로 귀결되는 상황까지 극의 전개에는 큰 무리가 없는 듯 하지만 무언가 설득력이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배우님들의 연기간에도 아주 조금이지만 편차가 있어보이구요.

(제가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극을 봐서 일수도 있구요.)

 

제가 관람했던 안똔체홉극장의 공연 중 오늘이 가장 등장 배우님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이나 호흡을 맞추기 위한 연습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를 생각하니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처럼

"인간은 인간에 의해 고독하다".

인간에 의해 치유받을 수도 있지만 인간에 의해 살해당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의 사회이니

우리는 언제든 강요받은 고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입니다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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