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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스파이 - 파울로 코엘료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5. 7.

이 소설을 보면서 가장 처음에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는

학창시절 에로영화의 포스터로 인식되어진 ‘마타하리’ 영화 포스터 였다.

당시 감각적인 영화의 심볼이었던 실비아 크리스텔이 주연한 영화.

그래서 ‘마타하리’라는 인물은 그의 행동에 대한 관심보다는

육체적 관능미를 이용하여 이중스파이 역할을 수행한 그 자극적 사실(?)로만 기억에 남았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이미지와 오버랩되어서...

 

1부는 그녀의 어린 시절(열여섯 살 때 교장에게 성폭행 당한), 실패한 결혼 생활(남편의 성적 학대) 그리고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파리행

2부는 파리에서의 성공적인 무용가 생활과 인적관계들을 맺어가는 과정. 독일에서의 스파이활동 제안, 그리고 프랑스로 부터의 스파이 역제안(?)과정들이 이야기 된다.

3부에서는 변호사가 마타 하리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그녀의 재판과 사형 선고의 부당성을 이야기 한다.

 


 

죄가 없다? 어쩌면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겁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도시에 첫발을 디딘 이후로 죄가 없던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정부 기밀을 원하는 자들을 조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으리라 여겼지만 결국은 내가 조종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이용한 것이라고는  상류사회 살롱에서 또도는 풍문들뿐이었지만 나는 스파이라는 죄명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요. 나는 돈과 권력을 원했기에 그 풍문들을 '기밀'로 둔갑시켰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죄를 돌리는 이들은 내가 누설한 내용 중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오랫동안 각인되어져 온 자극적인 영화의 포스터와 같이 자신의 관능을 가지고 활동해 온 스파이인지,

아니면 변호사의 말처럼 그저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던 혼란한 시기에 이용당했던 힘없던 여성일 뿐이었는지.

아니면 상류사회의 주류에서 밀리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저 허황된 이야기들로 삶을 꾸려나갔는지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기준에서 평가되지 못하던 시기 (물론 지금도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엄밀하게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난 희생자이지만 자신을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그리고 자신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하는 그녀의 말에서는 사실관계의 여부를 떠나 수동적 객체가 아닌 주도적 주체가 되고자 했던 그녀를 느끼게 한다.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죽는 순간까지 했을 마타하리.

과연 우리는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까?

그녀의 진실은 무엇일까?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전혀 아니었음을 마침내 인정하면 검은 수렁에 빠져들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 상처와 흉터를 마주하면서 도리어 내가 더욱 강해진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눈물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녔고,내 눈이 아닌 심장의 더욱 깊고 어두운 곳에서 흘러나오면 나 자신조차 제대로 몰랐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어두컴컴한 바다를 떠돌고 있었지만, 거친 바다가 허락한다면, 너무 늦지 않았다면, 저멀리 수평선에서 결국 나를 안전한 땅으로 이끌어줄 등댓불을 볼 수 있을 터였습니다.

마지막 순간 자신에 대한 깨달음.

긴긴 삶의 마무리에 마타하리를 안식처로 인도할 등댓불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등댓불이 비춰지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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