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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아무도 보지 못한 숲 - 조해진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4. 22.

아무도 보지 못한 숲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곳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가 그곳에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자로서 각자가 다른 숲을 보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 된다.

보이지 않는게 아니라 보지 못한 것!

반대로 얘기하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숲이라는 존재

그렇다면 왜?

미수는 현수의 숲을, 윤의 숲을

현수는 미수의 숲을,

윤은 미수의 숲을 보지 못한 것일까.


언제라도 볼 수 있었으나 한번도 보지 못한 숲.

 


 

세상은 대다수 아무런 존재감도 부여되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듯 한,

그리고 아주 쉽게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어지는 부속품 같은 사람들로 말이다.

그들은 날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마저도 서로를 보살핀다.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보살핌을 받는다.

 

미수는 보살핌을 받는다는 행위에서

보살핌을 펼치는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미수에게 있어 현수는 볼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보지 못한 존재였다는 의미였을까?

언제나 옆에 있음에도...

그리고 어느 순간 바로 옆의 현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보지 못했던 숲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저 희미한 윤곽이 안개를 걷어낸 후 뚜렷해지는 것처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작동을 멈추면서 눈앞의 풍경은 정지 상태가 되고 소리는 증발한다.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그만인 우주의 여분 같은 미완성의 공간에 혼자 들어와 있는 기분은 황홀한 고독감에 가깝다.


 

 

새들이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소리로만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왔다. 날개가 없는 새들일 거라고 미수는 생각했다. 날고 싶은 욕구를 참고 또 참으며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 온 존재들이 낼 법한 쓸쓸한 소리였다.


 

마네킹.

미수를 처음 봤을 때 윤이 받은 인상은 마네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수는 빌딩의 귀빈이나 안면이 익은 사무실의 간부들에게 허리를 굽혀 무언의 인사를 할 때를 제외하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윤의 동선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하루 여덟 시간 이상씩 같은 빌딩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미수와 윤, 현수는 닮지 않은 듯 하면서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체재로서의 삶.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실현시키지 못하는 존재로

그래서 각자가 느끼는 괴로움은 각자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연결된다.

 


그 괴로움이 그녀가 자신과 닮아서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설명할 길 없는 화가 불쑥불쑥 치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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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표면은 칼로 베어 낸 듯 매끄럽고 잔잔했으나 호수 안쪽엔 또 하나의 숲이 분주하게 흐르고 있었다. 보통의 호수는 아니었다.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대개의 호수엔 외부의 세계가 거꾸로 투영되지만 이 숲의 호수 속에선 하늘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넘실거렸고, 숲은 좀 더 깊은곳에서 출렁였다. 그래서인지 호수 안은 하나의 숲이 마치 위에서부터 아래로 곧장 수몰된 듯 보이기도 했다.


 

책에서 숲은, 때로는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처럼 미로, 늪이 되기도 한다.

 

미수에게 있어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인 숲,

그리고 그 숲은 708호에서 현실이 된다.

자기만의 안식처로서..

하지만 그 숲에서 조차도 또 다른 세상을 품고 있는 숲이 간직한 호수마냥

현실은 자꾸만 늪이 되어간다.

 


이 방이 정적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건 윤과 헤어진 후부터였다. 방 구석구석에 의미를 완성하지 못한 언어들이 잘못 배달된 소포들처럼 굴러다니던 때였다. 메트리스나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불가해한 시선으로 지켜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톡, 톡 터뜨려 봤는데 그대로 오물이 쏟아져 나와 미수를 어리둥절하게 했던 지독한 악취의 언어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윤이 이곳을 드나든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 방을 병들게 하던 악의적이고도 쓸모없는 혼잣말들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윤에게 있어 숲은 현실의 숲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삶. 자신의 인샘이 원하지 않는 삶에 갇힌 곳.

그리고 그 숲은 자신의 옥탑방에 숨어져 있다.

그래서 윤은 미수가 아닌 미수의 방을 탐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숲을 벗어난 새로운 안식처로서... 

 


미수의 방이 시간이 단축된 공간 같아서 좋다고 말하곤 했다. ~~~ 그런 기분을 양손에 쥐고 살 수만 있다면 남들을 앞지르진 못해도 보폭 정도는 맞춰야 한다는 강박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윤과 만나는 동안 그를 위로해 준 것은 미수가 아니라 이 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방에서는 이렇듯 시간 감각이 자주 상실된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이 방의 단 하나뿐인 창문으로는 낮과 밤 정도만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이 방에 너무 많은 시간이 밀려와 쌓이곤 한다는 것을 윤은 모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쓰다가 내다 버린 시간의 더미 같은 이 방을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그럴 때면 아무리 수시로 시계를 확인해도 시침과 분침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어제와 오늘은 경계 없이 연결되어 날짜 구분도 모호해졌다. 지나간 시간은 시시때때로 현재를 침범했고, 기대치가 없는 미래 또한 자주 현재의 시간에 되비쳐졌다. 추억할 과거도, 꿈꿀 미래도 없었다.


 

 

현수에게 있어 숲은 현실의 어두움을 품고 있다.

어둠의 조직세계 부속물인 자신에게 숲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와도 같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아니 어쩌면 자신은 그 불안정스러운 숲조차도 없는 것보다 나은 현실의 삶속에서 안식처로 인식하고 있다.

 


소년은 그 어떤 잔혹한 형벌보다 그 형벌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조직의 바깥 세계가 더 무서웠다. 유저들은 끊임없이 알려 줬다. 소년은 버그라고, 소년의 생존이 밝혀진다면 전체 시스템엔 치명적인 오작동이 일어날 거라고 그들의 검은 입술들은 확신했다.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앓는 사람에게 필요한 근사한 꿈에 대해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잠들기 전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꿈이 있다면 어떤 꿈이어야 하는지.소년은 407호 앞에 도착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407호는 요람 같았다. 인생이 짜 맞춰 놓은 모반과 진실을 아직은 직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곧 하나하나 배워 가야 한다는 사실이 불변의 진리로 예정되어 있는 요람 속처럼 편안했고, 동시에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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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숲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수의 숲, 현수의 숲, 윤의 숲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현수의 방, 현수의 방, 윤의 밤

그리고 할머니의 방

각자의 숲을 서로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각자의 방을 서로는 보게 된다.

보지 못하는 숲을,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는 볼 수 있게 된다.

각자의 방은 망각의 공간이기도 하고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현수가 그렇게 떠난 후, 나는 할머니의 방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했어. 할머니의 방은 현수를 잊지 못했고 구석구석에 그 애의 모든 것을 각인해 놓았어. ~~~ 매 순간들을 그 방은 하나도 망각하지 못했고 오히려 날마다 새롭게 기억해 냈어


 


인내로만 채워지는 자기 몫의 시계를 견뎌 낼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아무리 세고 또 세도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미수는 혼자서 천천히 배워가야 했다. 


 

미수가, 현수가, 윤이 보아왔던 자기만의 숲과는 달리

보지 못한 다른 이의 숲은

기꺼이 지친 자신의 안식처가 되어 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현수가, 윤이 미수의 방으로부터 얻었던 그 안온함처럼,


 

뛰기 시작했다.

간절하게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버그나 몬스터의 배역 따위 없는 곳, 갚아야 할 빚도 없고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하는 기억도 없는 곳, 칼이나 날카로운 유리 조각도 없는 곳, 사람이 상하지 않는 곳, 사라지거나 위장되는 자도 없는 곳, 그런 곳. 숲이라면 좋을 듯했다. 호수가 있는 숲, M 외에는 그 누구도 가 본 적 없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M만의 숲이라면 남은 인생이 긴 낮잠으로만 소모된다 해도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한 체,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년(현수)에게 있어 M(미수)의 숲은 미수 그자체이고 안식처가 되어줄거라는 믿음.

이 장면에서 불현듯

숲은 단순한 안식처가 아니라.

현수나 미수에게 있어 태초의 생명을 창조해 냈던 공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초반 미수가 자신이 태아때부터 아기로 태어날 때까지의 숲과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와 현수가 미수의 방에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소설의 뒷부분 현수의 꿈 속에서 이야기 되었던 숲과 호수, 과거에서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보여줬던 그 꿈의 이야기는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엄마의 뱃속을 숲과 호수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케 한다.

 

바닥 아래 깊은 곳에 호젓한 호숫가가 보이는 듯했다. M이 자주 발을 담그고 놀았을 고요한 호수는 소년의 얼굴을 맑게 되비췄다. 소년은 이 시간을 잊을 수 없다는 걸 느리게 깨달았다. 이제 앞으로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나든, 또 어떤 지긋지긋한 시간속에 놓이게 되든 이렇게 이 방에 귀를 대고 웅크리고 있던 순간은 소년이 떠올리는 M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고 그때마다 소년은 아주 조금씩 웃게 되리라.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버그가 마침내 디버깅된 곳, 그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완벽한 세계일 것인가.


 

마침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소비해버린

마치 정해진 시간을 소비해버리도록 감겨진 태엽의 작동이 멈춘 지금

다시 감긴 초침의 움직임에서 미래를 꿈꾸는 현수는,

드디어 누나의 한 손을 잡고 미로와 같았던 숲을 빠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저 넘어 보이는 숲이 지금의 미로와 같지 않을런지는 모르겠다.

그 초침의 움직임이 그저 정해진 마지막을 향해가는 태엽의 재작동이라면 어떻게 될까?


문이 열리자, 누군가 큰 목소리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그동안 의식하지도 못했던 초침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손목에도, 주머니 안에도 시계는 없었지만 오늘의 모든 어제들에 배당된 태엽을 차근차근 소비해 가면서 맨 마지막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다가가는 그 초침 소리가 소년은 반가웠다


 


 

"현수야"

부르는 그 말에, 소년은 대답했다.

"응, 누나."

손이 따뜻해졌다. 현수는 자신의 손을 감싼 하얗고 작은 손등을 내려다보며 미수가 속삭이는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누나의 등 뒤로 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외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