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숲속도서관에서의 시 읽기
병원 휴게실에서 빌린 김용택 시인의 필사하고 싶은 시선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역시 시는 자연과 함께 있을때 느낌이 더 사는 걸까?!
지평선
- 막스 자콥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아침 식사
- 자크 프레베르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탔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잔을 내려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떠나버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 버렸지
기도실
-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고독하다는 것은
-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림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생략~~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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