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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오직 두 사람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7. 8. 16.

2013년 옥수수와 나를 읽고서 이렇게 표현했다

 

김영하라는 작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 감각적인 상상력을 보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에서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를 접했을 때의 느낌처럼.

그리고 작가에 대한 내 느낌은 여전히 유효하다.

심지어 유희열, 황교익, 유시민, 정재승과 김영하가 함께 한 '알뜰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호감의 강도가 더 쎄어져 간다. 

 

 


우리의 기억에 각인된 4.16 세월호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보듬어주지 못했던 피해 가족들

김영하는 말한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직 두 사람

 

남들은 모르는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 하던 두 사람!

한 사람이 떠나면 대화할 수 없는 고독한 언어의 독방에 갇히게 된다.

아버지와 딸

남들이 모르는 둘만의 감정언어로 교류하던...

그런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딸은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되어 산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독방에 갇힌 체...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에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아이를 찾습니다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은 욕망.

손에서 놓아버림으로써 발생된 부재의 아픔.

위태로운 부부. 삶의 터전인 직장과 집을 잃고, 아내는 미치광이가 되어간다.

미칭광이 아내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모든 것을 원상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수단.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후 되돌아 온 아이는 그와 가족에게는 절망이 된다

이어지는 아내의 죽음, 아이의 성장과 가출

그리고 절망 뒤에 찾아온 손주와의 마주침.

그리고 비로소 쥐어잡은 손주의 양손

버팀목이자 희망이라고 여겼던 아내와 아들을 잃고서야

진정한 버팀목과 희망을 그의 손으로 부여잡게 된다.


'저렇게 손에 아무거라도 쥐고 있다면, 쥘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참 좋겠구나  ~~ 그는 자기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미친 아내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윤석이 정신 나간 아내에게 기대고 있었다. ~~~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없는 부부관게에서 그는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 아이의 양손을 놓지 않은 채 그는 오래도록 평상 위에 앉아 그에게 찾아온 작은 생명을 응시했다.'


 

 

인생의 원점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돌아가야 할 원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그저 대피소일 뿐이다.

그리고 원점은 어쩌면 인생을 사는 데에 헛된 꿈과의 결별과 살아남은 것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서진을 돌아가고 싶었다. 인생의 원점, 자신이 떠나온 곳, 사람들이 흔히 고향이라 말하는 어떤 장소로'


 

'원점과 달리 대피소는 당장은 눈물나게 고마울지 몰라도 언제든지 새로 만날 수 있다.'


 

' 자신만 아무 일 없이 무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문득 기가 막히게 좋았다. 행복감이 솟구쳤다. 엄청난 유혹을 이겨내고, 위기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켜냈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들었다. 인생의 원점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런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그는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옥수수와 나

 

2013년 감상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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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과 예술성을 잃고, 자본가인 사장에 쫓겨 상업적인 글을 써야하게 되는 작가 박만수.

자본주의 논리로부터 벗어나려고도,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떤 논리에도 불구하고 사장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타락한 진실속에서 작가 박만수는 전처와 사장의 관계를 진실을 외면한 체 왜곡해서 마주한다.

반대로 그 굴레로 인하여 자신은 사장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박만수도, 사장도, 그들의 아내들도 모두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및고 싶은대로 믿는 믿음.

더럽고 추악한 믿음의 진실, 아무것도 아닌 믿음의 허위.

믿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진실은 아닐터...

 

옥수수(박만수)는 영원히 닭(사장) 앞에 모이 신세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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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에 나온다.

자신을 옥수수라 여기던 사람이, 인간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불안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지 못하고 옥수수로 아는 다른 것들 때문임을.

 

그렇다면 내가 인식하는 존재가 진실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나라는 존재가 진실일까?

 

 

 

슈트

 

옷과 사랑에 빠진다면


 

 

최은지와 박인수


'씹히라고 있는 사장이야. 잘 씹혀주는 게 사원 복지고,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마. 그럴수록 위선자처럼 보여.'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위선이여, 안녕.'


 

 

신의 장난

 

'방을 나갈 수가 없다. 공포와 권태의 방,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다.'


 

'신도 우리의 집사일지 몰라요. 우리를 예뻐ㅏ다가도 가끔은 귀찮아하기도 할 거에요.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아니면 우리가 신을 떠나거나. 그럼 고난이 시작되는 거죠. 밥이나 주는 집사인 줄 알았는데 실은 전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던 거죠.'


 

'희망은 또다시 사라졌다. 정은은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자신을 가둔 존재에게 한번쯤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하늘로 쳐들었다. 신인지 집사인지 주인인지 모를 존재여, 이 엿이나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