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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오후도 서점 이야기 - 무라야마 사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3. 5. 14.

이 책은 서점이야기이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하면 서점에서 일하고, 서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책과, 서점, 서점인의 이야기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되어진다. 

공허함만이 남아 있는 누군가와 서로의 관계에 조금은 무신경(알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했던 사람들..

그들의 공허함이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에는 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에 충만한 하이틴로맨스 소설처럼, 만개한 벚꽃의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그런 소설이다.

마치 봤지, 나 일본소설이야 라고 외치는 것처럼, 일본소설의 간결함이 가득하다.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일찍 헤어져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잇세이.

그에게는 책만이 떠난 가족의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자신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소실한 자의 빈자리를 메워준 것은 작은 책이었기에,

책으로 대체된 잇세이의 마음 속 빈자리는 서점에서 일하는 것으로써 공백을 숨길 수 있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는, 눈 내리는 어느 밤 성냥을 하나씩 켜서 불꽃 속에서 행복한 환영을 본다. 잠시 동안 행복한 시간을 산다. 소녀에세 성냥이 있었다면 어린 잇세이에게는 책이 있었다. 성냥갑 속의 성냥과는 달리 책은 세상 어디에든 가득했고, 언어와 이야기가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책이 없었다면 진작 마음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대체재로서의 책, 서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다고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여전히 닫아놓는다.

안식처로서의 책과 서점은 존재하지만,

자신과 관계되어질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잇세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마치 사람을 따르지 않는 길고양이 같았다. 미소 짓고 있어도, 어느 정도 대화를 주고받긴 해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동료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속한 장소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체념하고 있었다.
'안식처'를 만드는 것을.

 

사건의 발단은 쫓아가던 책도둑 학생이 사고를 당하면서 부터...

우리는 정의에 대한 많은 말들을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느 것이 정의로운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에서도 깊이 다루어졌듯

이 책에서도 누군가는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정의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폭력적 말과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나는 정의로우니 그에 대한 표현을 해야만 하고, 그렇게 했기에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기애적 결론에 귀착되는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이미 공헌한 주인공에게 정의로움이란 공허하기만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잇세이는 분노에 찬 말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사람은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말이라는 탄환을 쏟아부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시도조차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 속 정형외과 의사가 한 말처럼 시도하기 싫어 핑계거리를 찾고, 

핑계거리를 통해 시도하지 않게 되고, 그리고 현실을 바꾸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죠.

주인공 잇세이도 '안식처'도 없는 '공허한' 삶을 바꿀 의지조차 가지지 않고,

그런 삶을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 합니다.

그 사건으로 서점을 떠나고 오후도 서점을 맡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당신은 지금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지금 '이곳'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사는 거죠.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 데도 안 보내려고, 안 가도 된다고,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오후도 서점 이야기'라는 책속에는
또다른 소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 들에게 그 책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주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허함은 채울수 없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채워져 '안식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책이 가져올 영향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꿈을 꾼다는 것. 지금보다 나아지길 바라며 고단한 삶에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삶이 다했음을 알게 되더라도 아침이 오는 것에 감사하고, 밤에는 편안히 잠들며,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가는 것에 감사하는 것.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비는 것.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는 사실.
만약 세상에 마법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고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라져버린다 해도, 기억이나 추억은 무가 될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이 이 지상에 존재하면서 울고 웃는 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지구는 요람처럼 많은 생명의 기억을 태우고 우주를 떠돈다.'
그렇다면 지구는 기억의 묘지, 기억의 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기사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사랑도 지구에 담겨 우주를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마음과 함께. 수많은 소망과 눈물과 미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