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책

완전한 행복-정유정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3. 11. 29.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읽게 된 "정유정 작가" 의 "완전한 행복"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 표지 속 인물들의 분홍 얼굴색만 봐서는 유쾌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봤어야 했다. 그 이면을...

달이 뜬 어두운 숲 속, 의뭉스러운 인물들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오리 한마리를 들고 있다.
왜?왜?왜?

 

이 책은 스릴러 였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살인사건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줬던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이 이야기를 태동시킨 배아이긴 했으나 많은 요소는 소설적 허구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머리 속 잔흔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는 독서의 과정...

작가의 말 에서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문제의 인물 "신유나"는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가는 거...

완전한 행복, 완전한 가족, 완전한 사회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틀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완벽한 자기애와 자존감으로 똘똘뭉쳐져 있다.

 

문득 "신재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과연 자기애적인 나르시시스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마따나 온세상 모두가 자기애와 자존감을 내세우기에 결국은 어느누구도 특별한 존재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혹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본질을 숨긴 채, 자신의 완전한 행복을 꿈꾸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새삼스러운 진실 하나를 깨달았다. 자신이 유나에게 당하고만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당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하고 물러서야 아버지의 착한 딸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력을 다해 맞대응하는 순간 아버지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믿는 딸이 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유나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 역시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꽃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망령이, 죽음의 위기에 도달한 이 순간까지 자신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제거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은 이면의 진실, 본질을 찾거나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인지하였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위한, 자기애의 또다른 표현이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본질과 사건의 진실에 마주쳤을때 그들의 행동은 불안스럽기 그지없다.

그것은 진실이 밝혀졌다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그들의 현재 불안정한 평안함마저 깨질지 모른다는 불길함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각자의 상황과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나서 마주한다.

 

어떤 사건이든 이면의 상황과 감정을 제거하면 본질만 남는 법이었다.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명백하게 보이는 것, 알고 있으나 인지하지 않았던 것, 행동이라 불리는 것.
그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각성이 그를 산산조각으로 부쉈다. 지금껏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자기 꼬리를 외면하는 개와 다름없이. 삶의 행로는 꼬리만큼 길고 분명한 것이었다.
꼬리를 자른다 하여 사라지지도 않는다.
양쪽 엉덩이 사이에 꼬리가 있었다는 걸 적어도 한 사람은 기억할 테니까, 바로 자신은.


 

그들에게 완전한 행복은 보장되어지지 않았다.

불안정한 평화가 깨진 그들이 마주한 것은 여전히 불안정하기만 하다.

세상이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때만 기다리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 대신 원치 않은 진실을 가르쳤다. 내일은 바라는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 간절히 원한다 하여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