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책

회색인간 - 김동식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3. 11. 5.

노동의 고독을 승화하여 써 내려간 뜨거운 소설이라는 평이 달린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

 

초단편들로 엮어져 있는 “회색인간”을 읽는 동안 “노동의 고독”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연결되는 부분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김동식”작가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레 작가의 경력을 살펴본다.

주민등록증이 나올 무렵에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간 삶.

2006년부터 10여년간 주물 공장에서 일한 삶.

살아가기 위한 직업으로서의 노동 속에서 작가는 꿈을 포기한 생활에서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세상을 통해 고독한 노동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활발한 그의 현재 창작생활을 보면 말이다.

 

회색인간이라는 책 속의 단편들은 참 묘하다.

일상적인 듯 한 것들이 사실은 비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듯 한 것들이 결국 비정상적인 것이고...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혹은 인조인간, 좀비 등등) 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인간의 인식의 잘못에서 시작된 출발점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듯하고 대중의 의견을 다 수용한 듯이 포장하고 결론을 이끌어 가지만, 결국 잘못된 도착점에 귀결되게 된다.

그런데 잘못된 시작이 꼭 잘못된 결과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연결되기도 하니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진리라는 것들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되묻게 된다.

 

본인은 인간이라고 믿고 인조인간을 찾아서 벌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인간이 주류이고 선이며, 인조인간은 비주류이자 소품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인식이

사실은 그 반대일때 겪어야 하는 당혹감은 인간의 몫인지? 인조인간의 몫인지? 작가는 묻는다.

 

멸종위기 동물 .... 인간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곳은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은 회색의 세상, 회색의 사람만 남는다.

희망이 없기에 회색인 것일까?

회색인간 세상이기에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런데, 아주 사소한 변화가 회색을 변화시킨다.

노래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는 아주 사소함이 견고하고 무너질 것 같지 않은 회색세상을 변화시켜나간다.

사람들은 항상 지쳐 있었고, 항상 배고파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엔 웃음이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사랑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으며, 대화를 나눌 기력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 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자는 중간중간 질문합니다.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그리고 답합니다.

상식이라고 믿는 것이, 안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그저 우리의 관념 속에 옭아매져 있는 것일 뿐이라고...

그저 해보는 것을 두려워 했을 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중에서)

세상에 모든 차별이 사라졌다. 사람들 스스로도 놀랐다. 세상에서 차별을 없애는 게 가능했다니?

시간이 흘러 신인류 아이들이 자라난 뒤에도, 아이들의 여섯 손가락을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 스스로도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냥 별것 아닌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