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짧은 단편 모음집.
책 제목은 여러 단편제목 중 "저만치 혼자서"가 진한 글씨라 그렇게 봐야될텐데.
실제 소설은 명태와 고래로부터 시작되어 저만치 혼자서로 마무리 된다.
책의 마무리에는 작가 자신이 왜 해당 단편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해 두었다.
김훈 작가의 작품특징처럼 다양한 단편에도 많은 형용사들로 문장이 이루어진다.
형용사를 줄이는 노력을 통해 주관적 감정을 줄이려고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형용사는 또다른 형용사로 인해, 앞의 형용사는 뒤의 형용사로 인해, 뒤의 형용사는 또다른 형용사에 치여, 의미가 희미해져 버리는 것들도 있다.
반대로 형용사로 인해 의미가 실감나게 풍부해 지는 것들도 있지만...
명태와 고래
작가가 밝혔듯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보고서를 읽고 두려움과 절망감 속에서 쓴 글이라고 한다.
남과 북이 구분되지 않은 동해바다의 바다마을에서
물결에 따르는 명태의 밀림처럼 6.25 전쟁으로 인해 북의 항구에서 남의 항구로 밀려내려온 주인공
분단 후 남의 항구에서 북의 항구로 밀려간 상황으로 인해 남측 정부로부터도 버림받게 된다.
주인공에게 있어 남쪽과 북쪽은 삶을 파괴하고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폭력으로만 기억된다.
그저 바람에, 바다에 밀려간 삶은 파괴되어지고, 이미 파괴된 사람에게 있어 삶의 희망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렇게 개인의 삶은 기억되지 않은 채 밀려갈 뿐이다.
이춘개가 죽은 해 겨울에 명태가 많이 잡혔다.
명태는 물결처럼 밀려내려왔다.
먼바다에서 고래들이 솟구치며 연안으로 다가왔다.
손
손은 많은 일을 한다.
수를 세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을 하고.
곱던 손등이 거칠게 터지고, 투박한 손마디에서 삶의 피곤함을 느낀다.
아버지는 딸의 자살을 부정한다.
무언가를 자꾸만 잡으려고 버둥거리는 딸의 손가락에서 어떻게 자살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손에서는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영자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다양한 군상 속 고시원의 삶
고시촌 세상에는 주류의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살아간다.
사람의 생존본능을 착취로 바꾸어 버리는 기성제도는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고시촌을 잉태했다.
희망을 이루어 또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 희망을 포기한 채 떠나거나 그저 버티어가는 사람들,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미련이 남은 사람들.
고시촌 속 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저 공무원 시험 합격 여부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관계를 예전처럼 돌리는 건 가능할까?
그렇지만 기성제도의 힘을 뛰어 넘는 해피앤딩이라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정지되어 있습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았고, 무의미한 것들이 쌓여서 무의미하지 않았다.
화해하려는 노력이 더 큰 싸움을 일으켰다.
그 여자의 결론은 '지겹다'는 것이었고, 나는 나의 지겨움으로 그 여자의 지겨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홀로됨, 외로움만 남은 중년의 삶은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죽음이라는 건 그렇게 말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그래서 건강검진도 받고,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무언가를 하게 된다.어떤 행위들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수면 내시경을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필요한 것처럼...세상은 홀로된 삶이라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대장 내시경을 위한 마취는 삶과 죽음을 한덩어리로 뒤엉켜 놓는다.존재와 의식을 희미하게 만드는 그 속에서 죽음과 외로움을 떠올리고 혼자임을 떠올리게 된다.
해야 할 일들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핑계가 되기도 하고
저녁 내기 장기
호수공원 장기판
크지 않은 저녁 내기 장기판이지만, 장기판 안의 삶은 장기판 밖의 고달픈 삶을 반영한다.
모르는 노년끼리의 대결.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결 속에는 더이상은 한발자국의 전진도 어려워 하는 삶의 퇴락이 뚜렷하게 남는다.
소싯절 잘나가던 삶은 사라지고 가정도 해체되어진 삶은 이제 아픔과 버텨야 한다는 간절함만이 존재한다.
뻔히 보이지만 힘없는 졸에게도 무참히 짓밟히는, 무엇도 할 수 없이 그저 되어져야 만 하는 무기력의 삶들.
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다.
멀리서부터 할 걸음씩 다가오는 초졸(楚卒)들을 이춘갑은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졸卒들은 한 칸씩 기어붙었고 좁은 길을 뚫어서 복병을 불러들였다.
장기판에서는 갈 수 없는 길들이 빤히 보였다. 갈 길은 못 갈 길 뒤에 숨어 있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비로소 보였고 보이면 갈 수 없었다.
잔전殘戰은 썰렁했다. 수手들은 말로가 드러났고 중원은 비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힘도 작동시킬 수 없었다.
저만치 혼자서
지난간 시간들은 스쳐가기는 했으나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듯했는데, 그 앞쪽의 시간을 건너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도라지수녀원.
떨어진 꽃들이 이듬 해 제철이 되면 다시 피는 것이 순리라면, 꽃이 지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텐데.
꽃이 지는 저쪽의 삶이 죽음에 스며 있다는 수녀들의 생각은 부활과 신생(환생)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에는 어긋나겠지만, 늙고 노쇠한 이곳의 수녀들에게는 꽃의 짐은 죽음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하느님의 품속에 있으면서도 죽음의 문턱앞에서 두려워 하는 수녀들의 모습은
인간적이기에, 하느님 품 속 믿음을 위한 지난 노력이 더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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