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은
노들장애인야학 활동을 했던 저자 홍은전이
장애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한겨레신문의 칼럼으로 게재한 내용을 모은 책들이다.
칼럼 속 장애인의 일상은 비장애인의 일상과 다르고,
시설 속 장애인의 고충,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장애인 탈시설 운동,
장애인 등급제 폐지, 장애인 이동권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절절히 전해져 온다.
그것은 그냥 관념적 사상으로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활동가로서 그들과 같이 경험하고 연대해온 실제 사례들이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 표현된 이야기들은,
실제 경험하지 못하면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독자인 내 의견을 쓰기보다는 전달만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없이
그냥 우리 모두는 사람!!!
한센 병력으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의 섬 소록도는 오랜 세월 차별과 폭력, 단종과 학살이 자행된 인권의 사각지대이자 침묵의 땅이었다. 수녀님과 같은 이들이 있어 갇힌 사람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덕분에 그 고통은 10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지속 가능함은 분명 어떤 평화에 기여했을 것이나, 그것은 실상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가둔 사람들, 소록도가 아니라 소록도에서 바라본 육지의 것이 아니었던가, 오래전에 깨어지는 게 더 좋았을 '당신들의 평화' 말이다.
변덕스럽게 범람하는 강가의 사람들. 작은 파고의 변화에도 삶이 통째로 휩쓸린다. 이 위태로운 삶에도 나름의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그 약함을 고리 삼아 강력한 연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농성에 능하며 전동휠체어를 탄 자신의 몸을 바리케이드 삼는 법을 터득했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수많은 장애인들의 목숨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유와 평등, 협력과 연대처럼 인류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아름다운 가치 그 자체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참혹한 시대에 여럿이 함께 사회적 몸을 이루는 활동지원제도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다.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구질구질함을 이해한 자는 그 구질구질함에 순교한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리던 그마저의 편리도 내려놓고 창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답다.
특수학교 설립은 정의가 아니다. 애초 학교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의 장이었다면, 그리하여 학교가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면 특수학교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아 열을 채우고 싶어 할 때, 선심 쓰듯 내놓는 타협이 바로 특수학교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로막힌 밤, 엄마들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위험 속에 산다." 위험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명백히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바깥에 있다. 일어날 위험에 대한 대비와 일어난 사고에 대한 대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 아닌가. 나는 중화상 사고의 생존자들에게 '그만큼 살게 해준 것을 고마워하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라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은 사리며 적당히 비걱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기록하는 사람이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사우는 사람ㅇ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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