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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작별인사 - 김영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2. 10. 4.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회자정리(會者定離))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거자필반(去者必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것이 어느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 단어들은 김영하 작가가 "작별인사"라는 장편 소설을 쓰게 된 출발점이자 책의 주제와도 연관된다.

호수에 앉아 달과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책 표지
감정을 가진 특별한 존재의 휴머노이드인 철이,
누군가의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클론인 선이,
그리고 달마와 민이, 철이를 만든 박사 등의 철학적 고민과 인간의 소멸이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표지속 그들은 너무도 평온하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감정이 있는 휴머노이드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육체가 존재하지 않은 채 클라우드에 갇혀 네크웨크에 연결된 의식은 그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닌 것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정의는 어떠한 기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성립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인간의 죽음과 휴머노이드의 죽음, 클론의 죽음은 서로 다른 것일까?
의식이란 무엇일까?
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이 이 책에서는 무수히 던져진다.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받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램밍한 것은 단지 그것들이 더 잘, 문제없이 오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 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각성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식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개의 의식이 찰나의 삶 동안 그렇게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에는 이야기가 있는 의식이 있고,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 있어.
달마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야. 달마는 그걸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라고 보는 것 같아.
휴머노이드의 의식을 모두 클라우드와 네트워크로 업로드해서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통합하려는 거잖아?
그런 의식은 탄생도, 고통도, 죽음도, 개별성도 없어.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다 사라지고 약점도 없을 거야.
나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해. 인류가 멸종하고 나면 당연히 이야기도 사라질 거야.
언어로 만든 거니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하겠지.
인류는 오랫동안 왜 외계인들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궁금해했잖아?
나는 그들도 이야기 없는 의식의 세계로 이미 진화했다고 생각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굳이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는 거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오래전에 초월했으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어.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민이도, 그리고 너도 당연히 이 이야기의 세계에 속해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직 미완성이듯,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최 박사는 뇌를 백업하고 영생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육신이 없는 영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일 거라고도.



이 여행에서 내가 죽는다면 비록 내 의식은 우주정신의 일부로는 존재하겠지만, 과거를 회상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개별적인 자아를 가지고 무한히 존재한다는 게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세상에는 내가 내 자아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며 소통할 수 있는 개별적인 존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달마, 라고 내가 부르는 어떤 존재도 사실 이미 거대한 네트워크에 흡수된 지 오래고, 다만 필요에 따라 달마라는 아바타를 통해 나와 소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물리적 실체는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리고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이미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한다. 선이가 늘 하던 이 말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