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18세기 영조와 정조의 시기는
우리 모두의 인식속에는
조선의 르네상스, 태평성대의 시대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조라는 임금은
개혁적 정책을 통하여
조선을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수준을 높여놨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인식에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정조는 성리학이 중심이 되는 보수의 틀안에서 정치를 이끌었고,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개혁자들인
정약용이나 김홍도 또한
전형적인 개혁론자 들이 아니라
개혁론자 중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사람으로서,
개혁론자들의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성리학적 기풍과 그에 호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켜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패관소품’을 척결하는 정조의 ‘문체반정’ 운동은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개혁군주로서의 우리의 인식과는 많은 간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18세기 영정조의 조선시대 후기는 정치, 철학, 학문, 종교 등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새로운 사조와 조선 내부의 오래된 갈등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어나는 시기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의 일환이 바로 ‘정감록’과 ‘천주교’의 급속도로 확산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 귀에 생소한 강이천이라는 작은 선비의 사건과 그에 대한 처리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를 놓고 정조와 강이천이 시대를 다르게 인식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였다는 점을 여러 사료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라는 점에서는 신선했지만,
저자가 말했듯, 논문을 쓰기 위한 사료의 조사와 본인의 생각을 기록해 둔 노트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라서 일까?
아무래도 책을 읽어가는 데 있어 부담감이 있다.
그리고 어찌보면 자료의 확보를 통한 입증의 형식을 띄다 보니,
동일한 내용을 겹치서 반복적으로 기술하게 되어 속도감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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