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루어진 개인의 결정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시절 과거의 잠재적 기억에 기인한 것이었다.
개인의 결정과 삶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쳐간다.
이것이 개인에서 상대방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또다른 가족으로 확대되어가는 모습은,
흡사 나비효과와 같은 잔상을 보인다. 단절된 시간, 연결되지 않은 사람같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연속된 시간의 흐름속에, 사람간의 연계된 관계와 영향을 보여준다.
‘고기’로 표현되는 다양한 인간의 욕망. 영혜는 욕망과 억압되고 강요되는 삶에서 태고의 자연, NS수한 모습으로 가고자 ‘채식주의’가 된다.
그리고 ‘나무’가 되고자 한다.
영혜에게 그것은 선택이나 결정이라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강’ 의 ‘채식주의자’는 2016년 한국인 최초의 맨부커 인터내셔날 수상작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라는 장편의 소설이지만, 실제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라는 3편의 중단편이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어진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남편이 중심이 된다기 보다는 ‘영혜’가 중심이 된다.
남편의 현실이야기보다는 영혜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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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 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고 이상한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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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상 그녀는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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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비슷한 느낌, 오싹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만이 남아 있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단호하고, 환멸스러운, 덜 식은 피처럼 미지근한.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개어져 있어.
동물을 희생시키며 얻어지는 ‘고기덩이’를 통해 만족스러운 식생활과 건강을 유지한다고 믿는 삶에서
영혜에게 있어 ‘고기’는 다른 사람의 희생, 타인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 것일까?
아니면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삶이 올바르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꿈’에서 나타난 잔영에 의해 그녀는 타인이 옳다고 믿는 삶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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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날카로움 대신 어느 누구도 해칠 수 없는 동그람을 희망하는 영혜에게 있어
자신이 동경하던 둥금이 희미해지는 현실은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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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채식을 하는 것뿐,
아닌 채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희생을 하는 것을 피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선택된 방법일 뿐이다.
어느 누구로부터의 공감과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할 수 밖에 없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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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고기를 멀리하고 채식을 하지만 그녀 내부의 포식자로서의 잠재된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듯 자신의 손으로 동박새를 죽이며,
포식자이면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영혜의 싸움은 혼란스럽다.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에서 화자는 영혜의 형부로 변화된다.
‘채식주의자’에서 욕망을 상징하는 ‘고기’나 태초의 의미를 지닌 ‘채식’에 비하여,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에서 보여주는 모호함보다는 보다 태초의 원시에 가까운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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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꽃이 열리는 장면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충격했다.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장면은 불가해할 만큼 정확하고 뚜렷한 인과관계로 묶여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의 스케치 속의 여자는 얼굴이 잘려 있을 뿐 처제였다. 아니, 처제여야 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처제의 알몸을 상상해 처음 그리고, 작고 푸른 꽃잎 같은 점을 엉덩이 가운데 찍으며 그는 가벼운 전율과 함께 발기를 경험했었다. (중략)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순수의 의미를 가진 아기들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몽고반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규범의 틀안에서 자신을 맞춰가며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존재다.
그런데 태초의 순수를 찾아가는 영혜의 몸에는 우연인지, 아이러니하게도 태초의 순수의 표식인 몽고반점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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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활력을 잃어가던 형부에게 영감과 충격, 전율의 모티브가 되어준 영혜의 몽고반점
영혜에게 있어 고기를 피하고 채식을 하는 의미는,
몽고반점 위 그림 속을 유영하는 형부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야기는 화자가 형부로 바뀌었을 뿐 태초의 순수로 향하는 마음에서는 영혜와 형부가 통하고 있다.
사람의 몸 위에 있으면서도 태고적, 식물적 느낌을 부여하는 몽고반점을 통해 형부 또한 영혜와 식물적(행위는 동물적이지만) 연결을 통해 동화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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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는 그를 보며 웃었다. 희미하지만 힘이 있는,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자신의 몸 위 태초의 몽고반점과
그것과 어우러져 그려져 있는 꽃과 식물을 통해서야 영혜는 평화를 찾는다.
자신을 숨조여오던 꿈에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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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지 않아서 씻지 않았어요.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꿈음 꾸지 않아요. 나중에 지워지더라도 다시 그려주면 좋겠어요.
그녀의 내면(꿈)에서 격동하던 끔찍함과 불안에서 멀어진 듯한 상황은 그러나 형부의 모든 것을 허물고, 영혜자신도 허물어진다.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각으로 전환된 “나무불꽃”속 언어는 이제 인혜의 이야기가 된다.
영혜와 형부의 동화와 연결을 파괴하는 인혜...
인혜의 불안이 아니었다면 과연 영혜와 형부의 안식은 깨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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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놀라울 만큼 호기심이 없었고, 그 덕분에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색도 없었으며, 당연할 법한 감정의 표현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이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런 짐작을 하게 되는 것은, 이따금 그녀의 눈이 단지 수동적이거나 백치스러운 담담함이 아니라 어떤 격렬함을, 동시에 그것을 자제하는 힘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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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알겠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 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는 걸.
이제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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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표했던 재발에 대한 우려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영혜를 가까이 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그애가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건너간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인혜의 불안은 영혜와 형부(인혜의 남편)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안, 내면속에 잠재해 있던 고통과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나무불꽃” 속 이야기는 어린 시절 기억과 정형화된 삶에 대한 탈출로서의 채식주의자나 몽고반점에서 말하던 태초의 순수를 향하는 이야기와는 달리 다분히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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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그런 인혜에게 채식을 넘어 나무를 닮아가는 영혜의 모습은 낯설음이자 부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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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덩굴처럼 알몸으로 얽혀 잇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 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마치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테이프를 만들고 싶어했을까. 그 기묘하고 황량한 영상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을까.
현실의 삶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뒤로도 나서지 못하는 인혜에게 있어
태초의 순수를 찾아가는 영혜와 자신의 남편이 남긴 영상은 이해할 수 없는 몸짓이었을 뿐이지만 자신 또한 그 영상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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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중략)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돌아본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거나, 숨어지내거나, 견녀낸 삶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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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영혜처럼 태초의 순수를 찾아갈 자신도 없고,
남편처럼 태초를 순수를 그릴 수도 없기에,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이길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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