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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패신저스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11. 24.

많은 우주공상 영화들이 영화속 우주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터스텔라', '마션' 등 최근의 우주공상과학영화들의 밑바닥에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깔려있듯 패신저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서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그저 지식백과사전같은 존재일 뿐 따스한 인간의 관계로는 부족하다.

제한된 공간 속의 제한된 사람의 관계.

공간적 개념이 우주와 우주선으로 바뀌었을 뿐 다른 이와의 관계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지구에서 찾지 못한 새로운 꿈, 희망을 찾아 '새로운 터전'으로 떠나는 5,000명의 승객과  258명의 승무원들.

그들은 꿈과 희망을 위해 동면의 상태에서 120년 동안 우주비행을 하게 된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위해 어두운 우주속,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에 자신들을 그저 자신의 몸만한 동면기에 맞긴 채, 이동해 간다.



동면기안 속 그들은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알지 못한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위해 현재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겪는 삶속의 선택과 같은 모습이 단순화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승객들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동하는 우주선 '아발론 호'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하는 최신시설의 우주선이다.


아발론이라는 이름은 아더상의 전설과 함께 어디엔가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전설상의 섬이다.

고대 영어로 '사과'를 뜻하는 아발(abal)은 그 자체로 해상낙원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고 한다.

사과는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먹었던 '금단의 과일'이기도 하지만, 인도 · 유럽어권 에서는 여신의 '성스러운 심장'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하니,

'아발론 호'는 그 자체로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아발론'의 전설적 의미는 조금은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영화의 결말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동면상태에서 119년 8개월만에 일어나야하는 승객들중

짐 프레스턴은 아빌론호의 문제로 인해 동면상태 30년만에  홀로 깨어난다.

90년을 홀로 지내야 하는 그에게 있어 유일한 위안은 로봇 '아서'와 함게 대화하는 시간.

그러나 그것조차도 인간적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대화일 뿐...

인간적 교류가 없는 짐의 홀로살아가기는 외로움과 쓸쓸함 뿐이다.

그렇지만 아서는 짐에게 말한다.


다른 곳만을 너무 바라보면 지금 주어진걸 누릴수가 없어요.

어쩔수 없는걸 갖고 고민말고 그냥 즐기세요.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기...

영화전반을 흐르는 주제는 아서의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의 꿈과 희망에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바로 곁에 있음을 말이다.

마치 '행운' 이라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 클로버를 밟고 있는 그런 안타까운 일을 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그런 그의 눈앞에 띈 '오로라'의 동면기.

첫 눈에 자신의 이상향임을 느끼고 그녀를 바라보고 같이하는 꿈을 꾸지만,

동면기에서 그녀를 깨우는 것에 대한 도덕적 번뇌를 하게 된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처럼 짐과 오로라는 같이하게 된다.


둘이 사랑할 때, 우주의 어둠과 행성의 활동 모두 아름다운 배경이 되지만



둘이 갈등할 때, 우주의 모습은 그저 어두움일 뿐이다.

짐의 행동을 몰랐을 상황에서의 오로라와 짐의 행동을 알게 되었을 때의 오로라는 달라지면서,

커다란 '아발론 호'의 공간은 적막해져 간다.


둘의 갈등 속에 영화는 관객에게 짐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한다.

과연 사회적 관계 속에 사는 인간이 홀로 살아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 내던져졌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일반적 상황과 동일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속 항해사 '거스 만쿠소'는 오로라에게 말한다.



물에 빠지면 누군갈 끌어들이게 되죠 옳지 않지만 이해는 갑니다




사랑과 이후의 갈등은

'아발론 호'의 위기를 없애기 위한 둘간의 협력을 통해 극복되어 진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통한 희망을 가꾸어나간다.

(그 과정들은 아쉽게도 결말과 연계되어 관객들의 상상에 맡겨지지만)



영화의 결말에는 4,998명의 승객(그들을 태우고 아발론을 관리하는 승무원 258명은 제외하고)이 꿈과 희망의 '새 터전'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짐과 오로라에 의해 가꾸어진 나무들과 숲의 모습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비춰진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발론호야 말로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생명의 근거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로라가 다시 짐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던 친구의 조언처럼

희망과 꿈은 120년 너머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있음을...


꼭 근사한 일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냐 그냥 삶을 즐겨 모험도 해보고 사랑해 오로라, 바이

짐과 오로라는 '아발론 호'에서 

아발론의 전설처럼  '삶과 죽음'이 대지의 힘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죽음대신 꿈과 희망을 찾아나간 것이다.


머나먼 곳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장소에서 꿈의 기쁨을 이루어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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