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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8. 23.

매년 전세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찾는 플로리다주의 올랜도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천국 중의 천국에서는 매일 밤이면 휘황찬란한 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영화는 상상의 천국의 건너편 사람들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무니와 어린 친구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삶의 단면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1967년 디즈니월드가 지어질때 사업명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라고 한다.

또 하나는 홈리스들을 위한 보조금 지원사업의 이름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라고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제목에서부터 '상상을 실현시켜낸 천국'과 '현실의 비참함' 이라는 중의적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게 된다.


영화는 아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가족영화로서의 의미로 축소될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의 화려함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면을 말하고 있다.






여기 사는 사람은 전쟁에서 싸웠었고,

여기는 맨날 맥주를 마셔

여기 남자는 병에 걸렸는데 다리가 커졌어

여기 사는 사람은 체포를 많이 당해

여기 사는 여자는 자기가 예수랑 결혼한 줄 알아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저소득층 사람들이 몰려살고 있는 보라색 모텔

그곳 어른의 삶은 디즈니랜드의 꿈과 낭만, 화려함을 가지지 못한 삶이다.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터야만 하는 미국 저소득층 어른들의 삶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화려한 위상 안에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어른들의 영향으로 거칠고 영악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무니, 젠시, 스쿠티)의 삶은 어른들의 삶과 상관없이 꿈과 상상, 즐거움의 삶은 이어진다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파란 하늘아래 폐가가 된 알록달록 집들이 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남의 차에 침을 뱉기도 하고, 불을 내기도 하고, 친구와 헤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즐거움으로 포장된 장면들 속의 내면은, 파란 빛깔 하늘과 보라색 모텔 벽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천진난만함은 언제 현실의 벽앞에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위태로움의 천진함이다.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것에 달가워하지 않는 다른 할머니(? 엄마?)에게 던지는 말


 

사교적이 아니면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사는 사회에서 서로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무니의 엄마의 말은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의 화려함 뒤,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서로가 서로와 어우러져 살아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대

근데 거기에 문지기도 있대. 문지기가 보물을 못 가져가게 한데

문지기가 착하면 좋겠다

쓰러뜨리러 가자.

 

보라색 모텔 너머 무지개는 엄청 아름답다.

아이들은 그 무지개를 보며 보물에 대하여 얘기한다.

보물에 대한 그들의 꿈은 어른들이 희망하는 경제적 꿈과 같은 의미일까?

아이들에게 보라색 모텔 넘어 무지개는 어떤 의미일까?




이 나무가 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지 아니?

비록 쓰러졌지만 여전히 계속 자라라고 있기 때문이야

 

무너져도, 쓰려져도 아이들이 다시 굳게 자라리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는 장면,,

그런데 장면속 커다란 나무는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있다.

아직은 그들의 놀이터가 되어 푸르름을 가지고 있지만 푸르름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언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땅에 뿌리를 두지 못한 커다란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듯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함도 서서히 현실의 벽 앞에서 사그러 들것이다.

현실의 벽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의 무모하리만치 긍정적인 모습은, 아쉽게도 영화종반, 좌절의 눈물과 대비되어진다.



영화는 미국사회의 화려함과 그 반대면의 어두움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나간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형편없는 엄마에 불과한 헤일리(사고뭉치에 무능력하고 폭력적인)가 역설적이게도 무니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의 품임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객관적 시각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염두해 두라는 듯하다.





헤일리의 직설적인 행동과 거칠 말해도 불구하고,

엄마와 딸로서, 딸의 친구에게 보여지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회적 기준의 잣대가 아닌 그들의 관계는

아름다운 석양속 그들처럼 아름답다.




결코 들어가보지 못했을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를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즐기는 세 사람의 모습속

어둡고 지저분한 지금의 현실과도 같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지금의 밑바닥 속 현실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영화 '어느 가족' 속 불꽃놀이를 소리로 불꽃을 상상하던 일본 가족들의 희망처럼 말이다.




현실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었던 헤일리나



겉으로 무뚝뚝해보이고 비즈니스적이지만,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만능 해결사 같은 든든한 인물 매직 캐슬의 매니저 바비’ 나 현실의 벽앞에서 무력하다.

 무니핼리’, 그리고 매직 캐슬’ 속 사람들의 지원자이자 응원과도 같은 그지만,

결국 그 또한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처럼 사건들에 개입될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일 뿐이다.

어둔 저녁,복도에서 괴로워하지만 결코 현실의 벽을 허물어 뜨리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비의 고뇌하는 모습은 더 사실감있게 다가온다.



홀로 돌아서 걸어가는 젠시는 남겨진 무니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무니와 젠시는 함께하는 친구다.



엄마와 헤어기 전, 배불리 먹던 화려함 속의 식당에서  무니의 한마디!



이게 인생인죠

 

그건 어린 아이의 입을 통하고 있지만, 엄마가, 어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제발..

넌 나랑 가장 친한 친구인데, 이제 다시 못 볼 것 같이

잘 지내

 

엄마와의 헤어짐, 친구와의 헤어짐은

결국 자신이 기댈 안식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누구보다 씩씩하고 명랑했던 무니는 즐거움을 함께하던 친구에게 눈물을 보인다.

이제야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경험하게 되는 무니...



젠시는 도움을 청하는 무니의 한 손을 잡고 어디론가 뛴다.

지금 순간 무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친구인 자신 뿐이었으니까



너무나 질척거리는 이쪽의 현실속에서

길 건너 '상상의 천국, 디즈니월드'를 향해,

아이들에게 있어 디즈니월드 궁궐은 저 멀리 무지개 끝에 있는 보물처럼,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비밀의 장소이자 이상향, 유일한 도피처였던 곳일지도 모른다.

젠시가 무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디즈니랜드 안에서 무니의 괴로움과 슬픔이 사라져 주길 바랬을 것이다.

마치 언젠가는 질척거리는 현실, 가난이 해결되어 신분상승을 꿈꾸는 어른의 희망처럼...



영화가 마무리된 순간에도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잔상이 많이 남는 영화

미국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이야기도 한 영화


그런데 영화속 내용에도 불구하고, 포스터는 왜 '디즈니월드보다 더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 라는 표현했을까?

마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이라고 해서 그 색의 이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마냥..

영화의 전반부에만 해당되는 한국내 영화포스터의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