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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공사의 희로애락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8. 25.


영화는 건설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장윤미 감독의 아버지를 통해 7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 국가성장시대를 관통해 온 60대, 70대의 삶을 그려낸 사적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건설현장의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공사의 희로애락’이라는 제목은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사’ 건설현장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고,

건설현장 노동자로서의 ‘공’ 적인 희로애락의 이야기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사’적인 희로애락의 중의적 의미도 있는 듯하다.

직업으로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소회와, 아버지이자 아들로서 살아온 소회의 축으로 아버지의 말을 배치한다.



영화는 철근 구조물을 만들고 있는 한 사람의 행동을 조용히 따르면서 시작한다.

한국의 말없이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영화 시작은 철근을 다루는 공구의 소리만 존재할 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하면서 자신의 100%를 다해왔다는, 100%를 다하지 못하면 화가 난다

 

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살아온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기술을 발휘하는 것에는 이윤이 남아야 훌륭한 기술

 

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요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요일을 잘 보내는 것도 계획하고, 잘 보내봤어야 그럴 수 있는데

자신은 그래보질 않아서 잘 안 된다

 

는 남자의 이야기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대비되어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묻어나는 듯하다.


 

열심히 살아오던 친구도 옆에 있고

조금만 열심히 살아오던 친구도 옆에 있고

열심히 살지 않았던 친구도 옆에 있다

 

그렇게 노동자로서 열심히 살아오고,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사람을 욕해왔지만,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 그의 곁에 남은 이들은 모두가 섞여있다.

자신감 넘치던 노동자로서의 삶이 사적 영역의 삶의 회한에 의해 그 의미가 혼돈되기도 한다.

 

직업인의 삶과 개인의 삶을 구분할 때 흔히 공휴일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현재도 공휴일에 일하는 사람에 대해 일에 미쳤다거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가졌다고, 공휴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을 가정적이라고, 근무환경이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는 산업의 역군이라 자신을 여기고 밤낮없이, 휴일 없이 일하며 살아오던 직업인의 삶과

누군가의 아들로서,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누군가의 아버지로서의 살아오던 개인의 삶은


 

일요일

 

이라는 한 지점에서 구분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영화가 펼쳐나갈 두 세계의 구분된 이야기의 복선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펼쳐놓는 휴일없이 달려온 건설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아버지의 손길이 닿아 있는 건물들의 화려한 불빛, 온종일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 일상 속 시장의 모습은 아버지의 자신감만큼 화려했을 건설 노동자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감독은 아버지의 이야기 속 현장들을 혼자서 담아낸다.)

건설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남자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힘들었지만 자신의 노력에 대해 상으로 보상해줬던 삼성중공업 건설시절을 들려준다.

그리고 가장 화가 났던 시절로 광주 상무지구 삼성건물을 짓기 위해 오갔던 88고속도로 위에서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에게 건설 노동자로서의 삶은 자신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듯 하다.


반면 아들로서, 아버지로서의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직장인의 삶처럼 확신에 차지 않음을 보여준다.

남자는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잃고 돌아본 삶의 쓸쓸함에 서글프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 딸의 질문에 대해 남자는

 

 

가장 기뻤던 때는 없었던 거 같다.

소소한 게 있었나...

 

라고 말을 흐린다.

영화는 노동자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개인의 기뻤던 때를 아버지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젊고 자신찼던 젊음의 시절이 지나버린

남자개인의 삶에 대한 아쉬움, 쓸쓸함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찍어보면, 이미 늙어버린 사람이 있다는

 

문득 사진 속에 나타나는 늙음은, 마음을 따를 수 없는 신체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젊음에 대한 후회가 가득하다.

나이 먹어감보다

신체적인게 10년만 뒤에 따라왔으면 좋겠다

 

그런 남자에게 딸은 소소했지만 행복했던 것을 회상시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고향 집 속 도리깨질을 자랑하던 남자를, 자신이 6년간 개근을 한 것이라며 얘기하던 남자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렇게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소했던 행복감이 있었기에 노동자로서의 삶도 살아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차속에서 토한 자신을 닦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좋았던 기억을 말하는 딸 앞의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할 뿐이다.



노동자가 되어갈 딸과 노동자인 아버지가 주고받는 전화통화속 너머 비치는

건설현장의 불 빛은 오늘도 밤낮 없이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건설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공사의 희로애락에 대한 어떠한 답도 없다.

어쩌면 인생자체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는게 아니기에 오히려 더 당연하겠지만,


< 감독과의 대화 (감독 장윤미, 영화비평가 이도훈) 를 통한 영화 속 이야기들은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


노동자로서의 자신있던 삶을 달려온 남자가 마주한 상실감과 나이듦에 대한 회한 가득한 개인의 희로애락!!!

나 또한 똑같은 삶이 될지도 모르기에 영화초반 말하던 그 일요일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이제는 60이 넘은 남자에게도 시작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