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전히 떠나고 싶은 여행/베트남

후에 그리고 하이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6. 1. 3.

후에(베트남어: Huế, 順化)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투아티엔후에 성(베트남어: Thừa Thiên-Huế)의 성도이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는 베트남(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도시에 있는 후에사원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수도 하노이와는 540 km, 베트남 최대도시인 호찌민 시와 는 644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베트남은 역사,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가 서로 별개의 과정을 거쳐왔는데, 북과 남을 가르는 기준점이 바로 이 후에이다.

현대에는 베트남전쟁 최대의 유혈전투였던 후에전투가 벌어지는 현대사의 무대가 되었다.


다낭에서 몇시간을 달려 온 후에에서의 첫 일정은 티엔무사원

차에서 내리니 먼저 눈에 띈 것은 기념품 가게들.

여기도 역시나 여러가게에서 흥정을 해야 그나마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가 있다.

이번 여행은 선물을 살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패스.

사원까지 가는 길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도 길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티엔무 사원에서 바라본 풍경이 여유롭다



티엔무사원(Thien Mu pagoda) 사원은 1600년대에 만들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당시 불교도들의 항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티엔무사원의 꽝득스님이 1963년 남베트남정부의 불교탄압정책에 저항해 사이공 미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을 했다고 한다.

꽝득 스님의 장례식때에는 10만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했다고...

더욱 유명한 일화는

스님의 심장이 타지 않자 베트남 독재정부에서는 비밀리에 스님의 심장에 황산을 뿌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심장은 멀쩡했다고

그래서 영원한 심장으로 불리웠고 현재는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사원안에는 소신공양때 타고간 오래된 오스카 자동차가 있고,

소신고양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거북을 쓰다듬으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에 따라

우리 일행도 거북에게 소원을 빌어봅니다.

소원은 항상 가족의 행복, 부모님과 자식들의 건강..

변하지 않는 소원입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그리고 자연과의 어울림을 생각하는 듯한 느낌의 사원입니다.




7층 8각의 복연탑(21.24m) 입니다.

1844년 세워졌고 각층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고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한답니다.

티엔사원을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크고 높지만 웅장하다는 느낌보다는

정감이 더 느껴지는 조형물이라고 할까요.






 

티엔무 사원과 주차장사이의 간식거리 가게에서 산 이것은...

이름은 모르지만,

감자같은 맛이 나네요.

감자 모양은 아닌데, 감자 맛이 나다니..

묘합니다


다음 코스는 역사와 과거의 영광을 확인해 볼 수 있는 후에성

가로세로 2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성벽이 해자를 끼고  늘어서 있다.

앙코르와트의 해장에 비하면 너비나 깊이가 작지만

과거 이러한 규모의 건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 시절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후에성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높디 높은 베트남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의 권위가 과거의 영광보다 우위에 있으며,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도도히 펄럭입니다

후에의 이미지중에 어찌보면 가장 웅장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공산화후

왕조의 유적과 유물들을 파괴하고 부정하던 그들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자본주의의 확장속에

그들이 부정하던 그 왕조의 유적과 유물들로 인한 관광수입이 주요 수입이 된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 같기도 합니다



후에성을 둘러보는 방법은

도보로 돌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생각보다 넓은 그곳을 습한 날씨에 걷는 것은 무리...

요렇게 앙증맞은 전기차를 이용해 도는 방법... 강추입니다.



앙증맞지만 꽤나 여러 명이 탑승할 수 있다는...

그리고 달리면서 맞는 바람이 시원하다는



전기차를 타기전 산 망고를 먹으면서

달려라~~ 달려라~~~



후에 전체를 통틀어 흐엉 강의 북쪽 지역인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유적이 자리한다

응우옌 왕조의 황제는 성 안에서 머물렀는데 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성 안쪽의 왕궁은 금지된 도시였고, 오직 황제들과 첩들 그리고 측근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사형을 당하였다.

후에의 역사 관광지로서 유지하기 위하여 재건축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오늘날 금지된 영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응우옌 왕조의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이자 궁전이다.

이곳의 뜰은 가로 세로 각각 2킬로미터, 높이 5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성벽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자에 담을 물은 후에를 관통하여 흐르는 흐엉강에서 끌어왔다.

이러한 구조물을 시터들(citadel)이라고 한다.

시터들 안에는 거의 2.5킬로미터의 방어선을 구축한 왕궁이 있었다.

대개의 관광객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남문 정면에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지은 디엔타이호아(베트남어: Điện Thái Hoà太和殿 태화전)가 있으며 디엔타이호아의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인 현임각이 있다.

그 외에도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 황제를 위한 인클로져(enclosure)인 자금성(베트남어: Tử Cấm thành紫禁城 뚜깜탄, the Purple Forbidden City)이 있다.

그 명칭은 중국의 자금성을 본딴 것이다. 이름만을 본딴 것이 아니어서, 자금성에는 수많은 궁전과 문, 궁정들이 있었다. 자금성은 응우옌 왕조의 황족들을 위한 곳이었다.


남문을 통해 입장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 아시아권 왕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특히 응우옌 왕조는 그 분위가가 더 심해

오늘 구경하는 궁궐들도

중국의 자금성을 크기만 줄여서 만든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왠지 베트남의 특성은 없이

남의 물건을 베낀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다른 문화를 동경했다고 해도

사실 한 나라의 건축물과 문화에는 그 나름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을텐데,,,

괜한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화전 부터

여러 전각들의 모습은

베트남 스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보다 더 공산화의 영향이 컸던 것일까요?

과거의 영화로움은 느낄수가 없습니다.

복원 공사들이 계속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예전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궁궐터의 규모와

황제를 상징하는 노랑색들로 봐서는

그들 나름의 자부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제대로 복원이 된다면

정말 아름다운 궁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큰 세력을 형성했을런지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와 인접해 있지만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나 궁궐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모습들로

동남아시아에서는 나름의 문화들이 형성되어 있었는가 봅니다




전각과 전각사이의 벽들에는

여러 동물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어,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궁궐 전각과 담벽에 있는 것과 모양만 차이날 뿐, 동일한 동물들이 존재합니다



실제 높이가 높지는 않지만

여러 층을 구성하여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상징적 높이를 만들어 놓은 듯 합니다








왕들의 신주를 모셔놓은 신성한 건물은

조선시대 종묘를 통해 왕권의 신성함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한 의미를 돌아보게도 합니다.

우리의 종묘와는 주변배치가 같지는 않지만

내부의 모습은 흡사합니다





전각들 사이에

자그마한 연못과 나무들을 배치한 조경은

이곳이 나라의 중심이면서

그들의 휴식처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후에성을 돌고 돌고...

전기차를 타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후에성 관광을 끝.


우에성 관광중에는 자유여행을 온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러나 아름답고 부러운 젊은이들의 도전과 여유가 아름답습니다.





훙카오 식당에서의 늦은 점심.

베트남에서의 식사도

여전히 맛있습니다.

여행은 밥심입니다~~~



다낭에 비하면

후에의 도로변은 예전의 시절 그대로 인듯합니다.

이번 여행 내내 운전을 도맡아 해준 기사님.

베트남에서는 운전기사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어디를 가던 옆에 조수가 동행을 합니다

조수들은 이렇게 동행하면 실습확인을 받아 시간을 채워야만 운전기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전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기사님들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하죠



다낭으로 돌아오는 길

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책도 보기도 하고

각자의 맘대로 무언가를 하는 차안에서의 시간들



중간에 들른 쉼터의 풍경이

여행스케줄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줍니다

나이가 먹어가는지

장시간의 버스 이동들이 힘들어지곤 하네요





하이반 고개길에서 내려다 본 랑꼬비치

랑꼬는 섬처럼 길게 뻗어 있고 야자수 모양을 가진 백사장이다.

한쪽 면에는 수정처럼 맑고 터키색인 산호초가 있다.

이 날은 구름도 많고, 비까지 내리는 날

심지어 멀리보이는 파도마저도 쎄다

BBC 에 소개된 비치라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ㅜㅜ





하이반 고개길 내내

자욱한 안개와 비로 인해

바로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위험한 상황.

바로 옆은 낭떠러지 인데 ㅜㅜ



후에와 다낭을 구분짓는 하이반 정상

날씨 탓에

이곳이 어디인지,

주변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이곳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전쟁때마다 격전을 치렀던 곳이라고 한다.

다낭이라는 곳 자체가

월남전때 우리나라 해병대가 주둔했던 곳인 만큼

이곳 하이반 고개 정상에도 해병대가 주둔했던 진지들이 있다



이런 진지속에서

당시 우리 해병은 전쟁과 죽음, 삶에 대한 생각들을 하셨을 것이다





헐~~~

하이반 정상을 내려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비는 거치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번 여행내내

하늘의 색은 동남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전히 떠나고 싶은 여행 > 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응사 해수관음상  (0) 2016.01.04
바나힐  (0) 2016.01.04
투본강 투어  (0) 2016.01.02
후이안  (0) 2016.01.02
다낭 대성당과 까오다이교  (0)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