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책

고백 - 미나토가나에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5. 6.

살인이라는 하나의 사건.

그것과 연결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소설은 살인과 연결된 사람들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들을 전개해 나간다.

담임 유코의 이야기, 반장의 이야기, 나오키의 엄마의 이야기, 나오키의 이야기. 와타나베의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들은 자신에 대한 고백들이다.

고백들은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황들을 이야기 할 뿐이다.

    


고백은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고백들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특정화하고 화자를 특정화해 진행해 나간다.

성직자(담임 유코), 순교자(반장), 자애자(나오키의 엄마), 구도자(나오키), 신봉자(슈아),

그렇다면 전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담임 유코로 귀결되는 것일까.

종교적 색채를 띄는 장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종교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등장인물중 어느 누구도 잘못을 후회하거나 미안해 하지 않는다.



살인자를 아는 담임 유코가 살인자에게 던지는 응징의 방법

그리고 그 응징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 심리상태,

마지막의 반전적 응징까지

유코의 심리는 그러나 설득력있지 않다.

또다른 살인자일 뿐 아닐까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살해당하는 사람이자,

담임 유코와 살인자 사이의 진행관계를 알고 있는 관찰자이자 피해자인 반장

그러면서도 슈야를 이해해 가는 사람의 심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섣부른 이해는 본인을 피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네게 나를 벌할 권리가 있어?

제 눈에는 슈야가 어리석은 민중들에게 모독당하는 성자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아들 나오키를 믿지만,

그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안 후 살인을 계획했던 엄마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아들에 의해 살인을 당하고 만다.

엄마의 심리는 어떠했을지...

본인의 기준에 의해 다른 이, 자식마저 판단한 그녀는

슈아의 엄마처럼 또다른 형태의 가정폭력을 야기한다.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단어를 종종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현상에 해당하는 사람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명칭을 부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직함을 얻음으로써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 직함도 없다는 말은 자기가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 시점부터 그것이 그 사람들의 소속이자 직함이 되고 맙니다. 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안심해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가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거에요



그 눈에 비치는 것은 틀림없는 광기였습니다. 그래도 살해당할 각오로 품에 안아주었더라면 좋았을까요. 그때 저는 제 자식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무섭다고 느끼고 도망치듯 나오키의 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오키는 불결이라는 갑옷과 함께 남들 이상으로 가지고 이TEjs 상냥한 마음시도 씻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제가 사랑했던 나오키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잃고, 당당하게 구는 살인자 아들에게 어미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나오키

실패한 삶이 아님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나오키.

그래서 살인을 증명의 기회로 삼고자 했던 사람의 심리변화들.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다. 한정된 삶을 산다는 것은 그저 공포일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하루하루는 전보다 더 평온하고 충실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태양이 아직 높이 뜨지 않았는데도 햇살이 바늘처럼 따가웠다. 환한 햇살에 눈을 찌푸리고 얼굴에 맺힌 땀을 훔치며 걷는 사이에 죽음의 공포도 생명의 증거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너무, 지쳤다......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나는 실패작이 아니야! 실패작이 아니야!




그 순간 생각했다. 이건 나다. 텅 빈 내부에 남아 있을까말까 한 행복의 잔해에 물을 타서 잔거품으로 채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환상인 줄은 알지만, 텅 비어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헤어진 어머니(가정 폭력을 일삼던) 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슈아.

어머니로부터의 관심을 위해 살인까지 행하고자 했던 그의 잘못된 믿음과 심리적 이야기들.


나라는 존재가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범죄자가 되면, 어머니는 달려와줄까





살인은 살인을 이끌어 낸다.

어떤 살인은 계획적으로, 어떤 살인은 우발적으로,

어떤 살인은 의식적으로, 어떤 살인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살인

누군가를 응징하기 위한 살인

   


와타나베 군의 인격은 어머니 이외의 인물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다른 누구 탓이 아닌 본인 탓입니다. 그래도 와타나베 군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자기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오래도록 어린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다 못해 욕구를 달성하자마자 한시적이고 무책임한 애정을 남기고 떠나가버린 와타나베 군의 어머니 탓이 아닐까요?



살인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단편처럼 각자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고민해 봄직한 문제들이 등장한다.

과연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은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적인 살인을 하지 않은 사람과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적인 살인을 한 사람중 어느 사람이 더 죄가 많은 것일까?

살인자에 대한 응징을 위해 살인자의 희망인 사람을 살해하는 사람의 행위는 타당한가?

법에 기대지 않은 응징은 정당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