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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말아라, 사랑아 - 나태주, 용혜원, 이정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4. 28.

사랑이라 하여

남녀간의 사랑만이 전부 인줄 알았다.

아버지를 떠나보낸지 3개월,

어머니의 큰 수술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다.

내리사랑만이 가득했던 삶에

당신들이 바라본 나라는 자식은 어떠했을까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느껴간다.

 

그리고 나또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내리사랑을 주고 있다.





허수아비

이정하

 

아빠는 그렇습니다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지만

늘 네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는 거

 

아빠는 그렇습니다

행여 네가 짊어진 삶의 짐이 무겁지나 않을까

늘 마음 조리며 바라보고 있다는 거

 

아빠는 또 그렇습니다.

해준 게 너무 없고 해줄 게 너무 없어

그렁한 눈으로 지켜보다

끝내 고개 떨군다는 것을

 

아빠는 정말 그렇습니다

세상의 험로 앞에 서 있는 너의 길이

평탄하며 순조롭기만을 바란다는 것을

늘 기도하며 서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청춘

이정하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한껏 푸르러진 산을 보고

어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저 산은 시방 청춘이네

 

어쩌면 부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못 들은 척하던 나는 운전하던

차의 속도만 조금 낮췄을 뿐이다

 

어머니에게도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왜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까

흘깃 룸미러를 통해 본 어머니는

그 푸르른 산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오래 전, 당신이 청춘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듯



보여줄 수 없는 사랑

이정하

 

그대 섣불리 짐작치 마라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을 뿐.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그대가 본 것이 작았을 뿐.

 

하늘을 보았다고 그 끝을 본 건 아닐 것이다.

바다를 보았다고 그 속을 본 건 아닐 것이다.

속단치 마라, 그대가 보고 느끼는 것보다

내 사랑은 훨씬 더 크고 깊나니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 없는

내 깊은 속마음까지 다 보지 못하고

 

그대 나를 안다고 함부로 판단치 마라.

내 사랑 작다고 툴툴대지 마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

 

마음이 작다고

어디 사랑까지 작겠느냐




사는 범

나태주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부탁

나태주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내 탓입니다

이정하

 

부는 바람이야 뭐

별 생각 있었겠습니까

 

흔들린 잎새만

한동안 그 느낌에 파르르 떠는 거죠

 

스쳐 지나갔을 뿐

당신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흔들리고 아파하는

내가 잘못인 거죠



한 잔의 커피

용혜원

 

사랑이 녹고

슬픔이 녹고

마음이 녹고

 

온 세상이 녹아내리면

한 잔의 커피가 된다

 

모든 삶의 이야기들을

마시고 나면 언제나 빈 잔이 된다.

 

나의 삶처럼

너의 삶처럼

 



관심은 그 사람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 주는 것이다.

간섭은 내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 주는 것이다.

간섭이란 일종의 감금이다.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에 가둬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