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초콜릿
우리가 별거 아닌 군것질 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달콤한 초콜릿(가격은 별거 아닌게 아니도록 부담되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약품으로, 성생활의 도움제품 등으로 사용되었던 초콜릿
그러나 초콜릿 속에는 내가 풍요한 만큼, 그보다 더한 빈곤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고 있다.
카카오는 3000년 전 중앙아메리카의 올메크족이 처음으로 식용하였으며, 마야 문명, 아스텍 문명을 거치는 동한 상류층의 음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던 것이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침략전쟁 속에 카카오는 드디어 서구사회에 알려진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역사와 맞물린 핍박과 억압의 카카오역사가 시작된다.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카카오는 활용되었고, 그만큼 토착민의 고통은 커져갔다.
제국주의가 무너진 자리 카카오의 노예노동은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최악에 빈곤에 빠진 누군가의 피눈물 어린 삶 위에서 기록됐다.
카카오농장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로, 동남아시아로, 다시 중앙아메리카로 그렇게
자리를 옮겼을 뿐, 노예노동과 어린이 노동 등은 존속되고 있고,
내 아이가 한 입 베어무는 초콜릿을 위해 카카오농장의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매일 12~15시간의 고된 노동에 혹사되고 있다. (정작 카카오 농사를 짓는 어린이 노예들은 초콜릿을 먹어 본적도 없고, 초콜릿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한 잘못은 선진국의 거대기업들은 이익을 위해 암묵적 묵인과 단합 속에서 눈을 감고 있다.
그러한 숱한 잘못을 고치기 위해 일어난 유기농초콜릿, 공정무역초콜릿!
그런데 유기농초콜릿과 공정무역초콜릿이라는 타이틀도 실상은, 현대판 노예제도가 자행되고 있는 카카오농장의 현실을 알고 있는 소비자들의 심적 부담(양심의 가책)을 덜게 하는 상술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러한 운동을 하는 기업들의 실제 소유주들은 최종적으로는 거대기업들이라는 사실...
참, 답답하다 .
“캐러멜은 스치는 유행일 뿐이지만 초콜릿은 영원하다.”라고 허쉬초콜릿의 창업주 밀턴 허시는 말했다고 한다.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와 내가족은 초콜릿을 안먹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떼낼래야 떼낼수가 없는 그런 식품이 된 초콜릿.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이고 정의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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