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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미스 함무라비 - 문유석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7. 11. 26.

최근 드라마의 트랜드 중 하나가 된 법정드라마.

그리고 법정 드라마이니 검사나 판사, 변호사 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순수 판사의, 그것도 민사합의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딱딱한 법률적 지식이 중심된 것이 아닌,

고등학교의 인연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엮어진 한세상 판사, 임바른 판사, 박차오름 판사의 멜로와 판결에 대한 고민들, 판사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시각이 가미된 이야기들로 풀어간다.

미스 함무라비는 주인공의 하나인  박차오름 판사를 국민들이 부르는 별칭이다


그런데 왜 함무라비 일까?

함부라미 법전은 무엇일까 ?

함무라비 법전( - 法典, 영어: Code of Hammurabi)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이다. 아카드어가 사용되어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우르남무 법전 등 100여년 이상 앞선 수메르 법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법전은 서문, 본문 282개조, 맺음말로 되어 있다. 고대 법전으로서는 희귀하게 사법(私法)의 영역에서 종교를 떠나 법기술적인 규정을 발달시켰으며, 형법에서는 ‘눈에는 눈으로’의 탈리오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땅에 있는 나무를 베었다면 그에 대해 변상해 주어야 한다.
  •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을 대려고 하다가 부주의한 사고로 다른 사람의 이 차게 만들었다면 그는 자신이 망가뜨린 곡식에 대해 변상해 주어야 한다.
  •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쫓아내고 싶다면 먼저 재판관 앞에 가서 "더 이상 내 아들과 함께 에서 살 수 없습니다."하고 말해야 한다. 재판관은 그 이유를 살펴보고 합당하지 않으면 아들을 내쫓을 수 없다.
  • 아들이 아버지에게 못된 짓을 했다면 처음에는 아버지가 용서해 주지만 두 번째로 나쁜짓을 하면 아들을 내쫓을 수 있다.
  • 도둑이 , 당나귀, 돼지, 염소중 하나라도 훔쳤더라도 그 값의 열 배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도둑이 보상해 줄 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
  • 에는 눈, 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도 부러뜨릴 것이다.
  • 의사환자수술하다가 환자가 죽게 되었다면 의사은 잘릴 것이다.
  • 건축가을 지었는데 그 이 무너져 주인이 죽음을 당하면 건축가사형에 처한다. 만약 집주인의 일가족이 죽었을 경우에는 목수의 가족중 해당되는 이가 죽어야 한다.
  • 강도가 어떤 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면 그 구멍 앞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다.
  • 만약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할 만하다고 하여 고소하고도 이것을 입증할 수 없다면, 고소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 궁중의 남녀 노예 혹은 자유민의 남녀 노예를 성문 밖으로 도주시킨 자는 사형에 처한다.
  • 만약 새로이 아내를 들이고도 그에대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인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 어느 노예라도 그가 주인에게 "이 자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주인은 자기 소유의 노예임을 입증하고 그 귀를 자를 권리를 가진다.
  •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두 손을 자른다.

  • 우리에게는 이에는 이로 대하고, 손을 잘라라 는 등 강력한 징벌적 내용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 판사는

    어린시절의 경험을 기억하며, 불의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정의를 실현하려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모습에 국민이 붙여준 별명.

    그녀는 외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

    이 소설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접하기 쉬운 민사소송과 관련한 내용이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사회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라고,

    기본적인 상황들이 이 소설과 많이 다를까?

    아니, 오히려 현실은 소설보다도 명쾌하지 못하게 결론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당연한 우리의 권리가 국가나 권력에 의해 침해되는 상황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자신의 권리에 대해 침묵하는 잠자는 시민이 많을수록 정의의 실현은 멀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을 우리는 겪어왔고, 그것을 극복하기도 했다.


    잊지말자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자!"



     

     

    사람들은 개인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복이라는 옷을 보고 절을 하는 거요.



    대다수의 일하는 이들은 화려하지 않고 튀지도 않는 일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은 호들갑스러운 탄식과 성급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묵묵히 굴러간다.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약자에게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잖아.

    자기보다 한 칸이라도 밑에 있는 존재들에게 손을 대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거라고.

    갑질과 통하는 얘기지



    사람 사는 세상은 정답만 있는 건 아니니 조급해하지 말아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조금 억울해도 그 또한 다 지나갑니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새로운 세계예요.

    원고가 평생 꿈꾼 마당 넓은 시골집은 아름답지만, 아이들의 꿈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이미 자기 세계 속에서 자기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먼저 커버리지요.



    상처받은 이유는, 비록 녀석의 말은 철없고 어리석었지만 나름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철없는 선의는 진실에 가깝기에 비수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나쁘고 추한 사람은 없다.

    나쁘고 추한 상황이 있을 뿐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들이 정말 진지하게 신녀들이 가져오는 '신의 목소리'를 신봉한 것일까?

    실은 그들은 단지 첨예하게 국론이 분열되고 의사 결정이 지연되어 전쟁 등 중대사에 대처하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신속한 최종 의사결정 시스템을 운영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재판 제도 역시 온갖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인간의 복수와 자력 구제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분쟁해결 시스템이기에 유지되어온 것 아닐까.

    불만이 있어도 판사가 내리는 결론에 따르겠다는 것 또한 근본적인 사회계약의 하나이니까.



    판사는 도로, 항만같은 사회간접자본일 뿐이다.

    주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기능한다.

    그 법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결국 시민들이 쥐소 있다.

    권리 위에 잠자지 말자.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