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영화

박열 : 제국을 흔든 조선인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7. 8. 15.

8.15 광복기념일

일본 제국주의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인의 기개를 보여줬던 박열의 실화


고향 문경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던 박열은 도쿄에 건너가 반제국주의 단체인 흑도회를 결성했고,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불령사를 창립하여 항일활동에 매진했지만 간토 대지진 당시 일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22년간 복역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석방된 그는 통상 민단으로 일컬어지는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재일교포들을 이끌었다. 1949년 영구 귀국했지만 이듬해 일어난 한국전쟁의 와중에 납북되었다. 이후 북한에서 조소앙, 엄항섭 등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결성하고 군비 축소와 국제적 중립국화를 추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6년 2월 27일, 박열과 함께 대역죄 및 폭발물단속벌칙 위반혐의로 재판정에 섰던 가네코 후미코가 낭독한 ‘26일 밤’이라는 수기의 한 절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도 좋다. 그렇지만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재판관에게도 말한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한다. 설령 재판관들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결코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다.’


조선의 개새끼라고 자신을 칭하던 박열

독립운동가이면서도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했던 그가 꿈꾸던 세상을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과 대한제국을 되찾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이, 더 나아가 전 세계 국민이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동지들이 함께했다.

조선인이, 일본인이, 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들이



그들 또한 그 투쟁속에서 어찌 두려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또한 즐기는 그들의 모습.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그들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투쟁의 삶보다도 더 각박하고 처절한 현실의 삶을 추측케 한다.



무정부주의자 이면서도

일본 제국주의 앞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말을 사용함으로써

제국주의에 권력에 저항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그들의 만행에 저항한다.



영화는 아나키스트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지만

여느 독립운동 영화처럼 전투와 폭발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내에서 보여지는 폭력은 일본인에 의한 간도대지진 당시의 폭력적 만행과 폭력뿐이다.

박열과 아나키스트들의 영화내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인 평온함과 이념적 신념,

그리고 사랑과 우정과 같은 보편적 인간성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동이 폭력을 배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기에 영화는 그들을 모두 보여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첫째, 나는 피고 아닌 조선민족의 대표로서 일본천황을 대표한 재판관과 동등한 자격으로 법정에 설 것이다. 재판관이 천황을 대신해 법관 법의를 입고 나온 것이라면 나도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이니 왕관과 왕의를 착용케 해줄 것. 둘째, 재판관이 심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 민족을 대표한 내가 먼저 법정에 서게 된 취지를 선언하게 해줄 것. 셋째, 법정용어는 조선말만 쓰겠다. 넷째, 피고의 좌석을 재판관과 동등하게 높일 것.”

이라는 조건을 달고

재판에 조선의 혼례복을 입고 한국어로 답변에 임한 박열

 


  

법의 테두리라고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법정은 그들의 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정이야말로

그들의 생각을 알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홍보수단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누군간의 희생이 따르긴 하겠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만행을

국가권력의 권력욕에 따른 제국주의가 어떻게 세상을 망치고 있는 가에 대해

일반인과 언론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선택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냈을 것이다.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념적 동지로서의 관계를 더 깊이 이어간다.

죽음은 그들을 갈라놓고,

남과 북의 이념적 갈등에 따라 그들이 한 묘지에 뭍히지는 못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바램처럼 그 둘은 함께 산 것이고, 함께 죽은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신념속에 살면서도 소리없이 기억속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내 육체는 맘대로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쩌겠는가?'


홍진



김중한



최규



최영



정태



구하라 가즈



니히야마 하쓰



조선인의 억울함과 치열한 투쟁을 알리기 위한 투쟁의 기자 이



법적 양심에 따라 박열을 변호하던 후세 다쓰지 변호사



흔들리던 예비판사 다테마쓰



그리고 우리가 더더욱 잊으면 안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들

이들에 대한 기억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다시 부활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우파들을 영원히 막지 못할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자들의 끝을 반드시 정의의 이름하게 기억하고, 추적해야 한다.


내무대신 미즈노



군국주의 일본 내



개새끼-박열

 

나는 개 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의 괴로움처럼

개새끼의 삶이 아닌 자 얼마나 될까

광복절을 맞아 다시 되내이게 된다

'어쩌다 접하게 된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큐어( A Cure for Wellness)  (0) 2017.08.31
히든 피겨스  (0) 2017.08.24
클로버필드 10번지  (0) 2017.08.15
택시운전사  (0) 2017.08.09
에어리언 커버넌트  (0) 2017.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