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만 느껴지는 느낌은 그저 먹는 ‘아몬드’와 관련된 소설이겠거니...
아몬드하면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떠올리게 되는 무조건 반사법칙이 내게 그대로 작용한 셈이다.
그런데 소설에서 먹는 아몬드는 글의 초반, 그리고 글의 중반이후에 잠시 등장할 뿐 우리가 상상하는 중요성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다.
글은 오히려 표지의 무표정한 얼굴의 소년과 매치되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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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나는 아몬드라면 미국산부터 시작해서 호주산, 중국산, 러시아산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 봤다.
중국산에선 기분 나쁜 쓴맛이 나고 호주산은 뭔가 모르게 시큰털털한 흙냄새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내 입엔 역시 미국산,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산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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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안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따.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태생적으로 감정 표현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감정자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윤재'.
세상에 이면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없는 그이기에 세상을 현상 그대로만 받아들인다.
감정이 없기에 누군가와 공감하기도 어렵지만 반대로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논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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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다. 용감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두려움이란 생명 유지의 본증적인 방어 기제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건 용감한 게 아니라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있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무서운 표정으로 훈계를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예컨대 소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 이런 게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내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다.
태생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인 ‘윤재’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다른 청소년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좀 더 소설적 요소들이 많다는 것과 주인공의 성장이 단순한 정신적 성장이라고 말하기에는 더 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미성숙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이 신체적 성숙만큼이나 정신적인 성숙을 다루고 있는 일반적 청소년 성장소설(성장하는 것이 당연한)과 달리 태생적으로 정신적 성장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려 나간다는 점이다.
청소년 성장소설인 ‘19세’에서 느껴졌던 것이 청소년기의 방황과 그것을 통한 개인적 성장이라면,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자신과 주변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다르다.
물론 ‘19세’가 자전적 소설인 반면에 ‘아몬드’ 는 소설적 도구에 의해 구성된 점으로 인해 결과적 차이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청소년이 성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청소년 성장소설과 동일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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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감정이 없는 소년에게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느끼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대다수 사람에게는, 그리고 ‘윤재’ 또한 반복이라는 것을 통해 습득보다는 의미가 사라진다는 정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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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이가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알려 주려 했다면 도라는 내게 꽃과 향기, 바람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그건 처음 듣는 노래 같았다. 도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꿔 부를 줄 아는 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곤이’라는 친구를 통해 무심한 듯한 반복됨이, 익숙해짐이, 친절해짐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배워간다.
또한 ‘도라’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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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거든.
난 너무, 늙어 버렸으니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럭저럭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윤재’ 앞의 ‘곤이’는 자신의 삶을 되돌릴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이미 주변으로부터 이미지화 된 ‘곤이’, 그가 말하는 늙음은 더 이상 무엇도 돌이킬 수 없고, 젊음의 가능성, 젊음 자체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운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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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엄마가 있다가 없어지는 거랑, 애초에 기억에도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버리는 것 중에서.
그 시간의 터널에서는 모든 것이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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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시간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어떤 방향이든. 그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운명과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로 인해, 서로로 인해, 모두로 인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인생이 진행될 수 있다는 건.
소설은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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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어릴 적 구원의 의미는 부모님으로 각인된다.
나이가 들어가고 사회화 되면서, 구원의 의지가 되는 존재는 친구로, 동료로 확대되어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괴로워 하고 불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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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 답을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나도, 청년기의 나도, 성인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저 4지 선다형의 답을 콕 찝어내듯 그렇게 답을 찾고자 한다.
답은 서술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찾아낸 답조차도 오답같은 삶을 이해하지 못한 체, 또다시 답을 찾아가고자 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윤재’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와 맞을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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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그 과정은 나의 삶이 아닌 ‘윤재’의 과정이고 답이기 때문이다.
수백가지의 답이 존재하는 곳에서 나와 똑같은 답을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지도 모른다.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남아있을 것이다.
답 앞에서 그것이 답인지도 모른체 말이다.
나 또한 지금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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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 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하지만 ‘윤재’는 ‘곤이’는, 나는, 우리는
서툴지만 삶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론이 너무나 일반적일 수도 있겠지만,
목적이 아니라 과정자체가 답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서툰 발걸음들을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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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내 얼굴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뜨겁다. 델 만큼,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가 탁, 하고 터졌다.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아니, 밀려드는 게 아니라 밀려 나갔다.
몸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둑이 터졌다. 울컥, 내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졌다.
”느껴져“
그것의 이름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외로움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환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다. 구
역질이 났다. 떨쳐 내고 싶은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서툰 발걸음 속에서
태생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윤재’가 무엇인가를 느끼던 것처럼
무언가를 느끼게 되기를, 그렇게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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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저자는 심박사를 통해 말한다.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것임을,
삶의 구원과 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이끌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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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는 무슨 의미로 그렇게 썼을까.
도와 달라는 손짓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원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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