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6. 25 전쟁이라는 한 시대를 거쳐 온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자녀 세대간의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파묘”, “하고 싶은 말”, “무명”, “다가오는 것들”
하나 하나의 연작속 이야기들은
때로는 어머니의 관점, 때로는 각 자녀들의 마음 속 이야기다,
사람들의 삶이지만 각각의 삶의 크기와 굵기는 같지 않다.
가는 선의 두꺼운 삶이 있는 반면 두꺼운 선의 가는 삶도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규범속 테두리에서 그 삶들은 독립적이기도 하고, 교집합이기도 하다.
이순일(순자), 한세진, 한영진, 외할아버지, 죽은 동생, 이모와 그녀의 자녀 라는 존재들은 그렇게 서로의 의식과는 관계없이 얽히고 설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아이도, 깊은 수풀 속 어딘가에 남은 조그만 집터처럼 거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채 방치되어 있던 이름들이 그 서류 한장에 남아 있었다.
혼인신고로 본인의 이름을 지우고 사망신고로 그들의 이름을 지운 뒤 그 서류를 보았다는 걸 잊었다.
이름 위에 반듯하게 그려진 곱표들과 거기 기록된 망자를 잊었다.
망실된 그들의 이름은 이순일의 삶이 끝날 때 비로소 완전한 망이 될 것이다.
교집합적인 삶의 공유 속에서
가족 누군가의 존재를 완전히 무(無)로 만드는 망(亡)의 희망은 그래서 거짓된 희망일지도 모른다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라는 말처럼 자신의 욕심을 포기한 채 살아온 삶은
또 다시 자신의 욕심을 포기한 채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삶의 조각 속에 각인되어진 시간과 세월을 온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너희 중에 누군가는 더러운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모든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속에는 누군가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해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과연 누가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강요하는 걸까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그리고 소망하는 그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당연히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않고 그저 매일 매일을 버텨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삶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이기도 하다.
생각과 그와 연결되는 행동의 연결고리를 완성하지 않음으로써 실존의 평안함을 완성하려는 모습말이다.
소설은 가족의 이야기이자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야기 속 남성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동적인 반면
한 세대에서 그 다음으로 넘어간 세대 속 여성들은 여전히 피동적이다.
(피동적이기만 한 것이냐는 좀더 따져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피동적인 삶을 강요받은 피동적인 삶에 순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오고 살아갈 삶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서의 대상이 타인인지, 자신인지,
남성인지, 가족인지,
아니면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한 시대인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은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세대를 이어온 고통과 슬픔, 희생들이 혼재한 속에서
그저 바쁘게 지나가는 삶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하는 듯 하니 말이다
슬픔, 실망, 환명, 분노가 어찌 “사랑”이라는 단어의 테두리안에 갇히도록 하는 걸까
어찌 보면 한영진이 아버지에서 느꼈던
“ 너희 중에 누군가는 더러운 거짓말을 하고 있어
라는 문장에서 느껴왔던 피비릿내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기대하는 것들을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하미영의 말을 곱씹는 한세진의 모습은 어머니 이순일보다 더 현실순응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 수 없으니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면 가족의 희생은 “사랑”을 통해 무마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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