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접하게 된/책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11. 4.

생소한 자히르라는 단어에 이끌린 이 책.

역시나 파울로 코엘료 특유의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삶의 본질적 접근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성공한 작가인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린 나의 아내이자 종군기자 에스테르

에스테르의 통역사 였던 미하일

나를 사랑했던 마리



책의 첫 시작도 '나는 자유다' 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의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과 삶에 대한 진정한 자유를 찾아 헤매이게 된다.



포부르 생 페르는 1953환상백과사전에서 자히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18세기경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 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나가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신성일 수도, 광기일 수도 있다.


자히르는 부정적으로는 광기 어린 편집증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원일 수도 있다.

아랍어에서 자히르는 신의 아흔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라고 하는데, 어쩌면 난폭한 신과 자비로운 신의 두 얼굴처럼 양면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로 인식하고 쓰느냐는 온전히 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고 한다면,

이 책 '오 자히르'는 자비롭고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을 꿈꾸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의 전개속에 사랑과 평화의 신의 다른이름이기도 한 것 같다.




투쟁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자유의 이름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별난 권리를 옹호하면 할수록, 그들은 점점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갔다. 부모의 욕망의 노예, 타인과 여생을함께하기로 약속한 결혼생활의 노예, 체중계의 노예, 정치체제의 노예, 금방 포기하게 될 무수한 결심들의 노예였다. ~~~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게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삶의 노예. 그들의 낮과 밤은 그렇게 이어지고, 서로 닮아갔다. 모험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였고 밤낮 켜놓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이미지일 뿐이었다.

~~~ 사실 사람들은 사소한 습관들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우주가 그 변화로 인해 뒤 흔들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 그것들은 매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 나의 광기와 삶에 대한 내 갈망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만 아니라면 타인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일이다.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마치 훈장처럼 상처들을 몸에 지니고 있다. 자유는 구속만큼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그

값을 치른다는 점이다. 비록 눈물 젖은 웃음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꿈꿀 뿐 탐색의 투쟁없이 그저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노예로 만족하고 살아간다.

실행없는 희망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바로 그거야. 나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불행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야. ~~~ 내 눈과 마주치는 그 모든 눈들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은 무한한 번민이었어. 언제나 감내할 수는 없는 슬픔..... 사람들이 입 밖에 내어 얘기하지 않지만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고.

  

에 대한 탐색은 에스테르가 자신에 대한 탐색을 하고, ‘미하일이 자신에 대한 탐색을 하고, 등장인물들 각자가 자신을 버리고, 과거를 버림으로써 실제의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탐색의 종착역에, 누군가는 과정에, 누군가는 출발점에 서 있다.





자히르가 서서히 내 마음과 정신을 장악해 들어왔다. 내겐 해독제, 나를 절망으로부터 건져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새로운 연인을 만드는 것.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인 '나'에게 있어 떠나가 '에스테르'라는 자히르는 부정적이고 삶을 피례하게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자히를 잊기위한 대체재로서 무언가를 찾고, 그것이 또다른 사랑이라는 존재라는 주인공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틀렸음이 드러난다.




성당 중앙 홀에서, 불현 듯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성당, 그것은 나였다. 우리들 각자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모습도 변화한다. 고쳐야 할 단점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늘 최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르게 서려고 노력하며 계속 전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벽이나 문 또는 창문들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위해서다. 내부의 빈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숭배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의 성당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 성당 안의 빈 공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에스테르, 자히르.

그녀가 그 빈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그녀는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리고 대체할 수 없는 자히르라는 존재로서의 '에스테르'를 깨닫게 된다.

이제 소설은 본격적으로 '에스테르'라는 존재가 나와 주변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남편을 사랑하고 있고 남편 역시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결혼생활이 조금씩 망가져가는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멀리 떠나 있는 게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지만, 불행합니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불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수도 있었습니다.

무너져버린 사랑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발견할수록 자신을 잃어버렸고, 더욱 혼자라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자기 길을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에서 겪은 일은, 자신이 틀렸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여깁니다.





찢어버리는 시간은 때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그가 내 삶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최악의 경우입니다.

    



난 언제나 그녀의 빛을 빨아들였다. 그 에너지는 나를 행복하게 했고 자신감 넘치게 했고, 나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반면 그녀는 나를 보고는 스스로 추하고 가치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 경력, 그녀가 조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 경력이 우리의 관계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 나는 내 얼굴을 그녀의 얼굴처럼 정갈하게 씻어야 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만나야 했다.


나의 방식이 아닌 존재자체의 중요성을 가지는 각자의 삶과 인식, 그의 방법을 인정하므로서 진정한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들은

그러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 문제를 풀어가듯 사람들은 인생을 살고 자히르를 인식하지만,

실제 인생의 답은 정해진 것이 없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속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주관식의 답이지만 주관식의 문제는 정답을 원하고 있지않고 있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백점 만점의 답을 달수가 없다.




목소리를 통해 결국 내가 표지들을 따르기로, 때가 되어 스스로 일이 일어나도록 기다림으로써 자히르의 권능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에게 추구하는 바를 계속 따라가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목소리는 내게 단 한 사람의 변화가 인류 전체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전쟁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니까. 난 그렇게 믿어. 그곳에선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자기 한계에 도달하면,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지.

    



아코모다도르. ‘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각자의 삶을 살고,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그 한계가 변곡점이 되어 변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주인공인 '나' 또한 '에스테르'라는 존재의 떠남이라는 한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변곡을 맞이했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


하지만 책의 결말에 이르는 사랑의 방식은 당혹스럽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 '나'와 '에스테르'의 만남과 떨어져 있었던 동안의 그들의 삶이 모두 이해되어져야 하는 결론은 쉽게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아직 난 탐색의 출발점에도 서있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스텝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사막과 비슷하지만, 덤불로 이루어진 초지에는 들끓는 생명이 숨어 있엇다. 나는 끝 간 데 없이 뻗어 있는 지평선을, 무한한 빈 공간을 보았다. 그리고 말발굽 소리와, 고요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우리 주위에는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은 세상이 자신의 광활함을, 단순함과 복잡성을 동시에 펼쳐 보이기 위해 선택한 장소였다. 우리가 스텝처럼 텅 비고 무한한 동시에 생명으로 가득 찰 수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기 위해.

나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이 광명 속에,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도처에 존재한다는 느낌 안에 축 잠겨들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말을 달렸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알 수 없었다. 중요하지도 않았다. 내가 찾고 있는 여자는 이 무한한 공간 어딘가에 존재했다.




당신에겐 이 땅에서 완수해야 할 고귀한 사명이 정말로 있는 것 같소. 사람들이 그들 개인의 과거사를 잊도록, 그리고 순수하고 성스러운 사랑의 에너지에 활짝 마음을 열도록 가르치는 것이 그 사명이겠지.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의 모든 면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신의 사랑을 보여준 거야. 신의 사람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 그는 이웃들을 사랑하게 돼. 그가 이웃들을 사랑한다면, 그건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되찾을 거야. 역사가 바뀌는 거지.




내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해주기를 원할 때, 사랑이 통제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롭게 날 이끌어가도록 두지 않을 때 고통이 자라나는 거라고




결국 죽을 텐데 왜 태어나는 건가요?

신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스텝은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답해주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는 결코 답이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걸 아는 걸로 충분하다고.




결국 죽을 텐데 왜 태어나는 건가요?

신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스텝은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답해주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는 결코 답이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걸 아는 걸로 충분하다고.


답을 찾지 못했다고...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도 시작하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나에게 있어 '자히르'는 무엇일까? 자히르는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적인 삶 속에서 나는 하루를 조금씩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한 발 한 발 나아감의 끝이 어디에 다다를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