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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자기 개발의 정석 - 임성순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4. 8.

소설이라는 장르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저 어떤 류의 자기개발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책

일상이 무료했던 나 또한 자기개발이나 해보자면 책을 펼쳐드는데,,,

이거 참 황당하면서도 신선한 발상과 전개..



나름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면서 결혼해 딸아이를 키우면서 평균보다는 조금 나은 삶을 살아가는 이 부장.

아내와 딸을 외국에 보내고 홀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그의 사람은 이제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정해진 직장, 가정의 삶 속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정해진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은 행복이라고 믿는 이 부장.


외로운 날은 야근을 했고, 말할 수 없이 허한 감정이 갑자기 몰려드는 날이면 회식을 했다. 그때마다 아랫것들은 도끼 눈을 했지만, 상사들에겐 회상에 헌신하는 직원으로 사랑받았다. 빈궁한 지갑을 제외하면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이 부장은 생각했다. 이것도 나름의 행복이겠지.



그런 그에 닥쳐온 불행, 전린선질환의 치료.

홀로 남은 그에게 주어진 치료법은 아로네스를 이용한 자가 치료...

비뇨기과에서 맞닥트린 트인 바지는 낯설음을 넘어 그에게 두려움이자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 부장은 자신의 불행이 결핍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만성피로처럼 달라붙어 자신을 소모시키던 그 둔한 불행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결핍 탓이라 믿던 때는 달릴 수 있었다. 더 많은 것을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전까지 이 부장의 세계는 아주 단순한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목표와 결과가 있었고, 목표를 향하는 거대한 기계는 그의 인내를 연료로 움직였다. 세상은 쓸모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으로 나뉘었고,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면 효율을 위해 버려 마땅했다. 적자생존이란 단어의 의미는 명확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쓸모 있는 것이 되어야만 했다. 이 부장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그 목표라는 것이 결과와 일치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나 가족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저 앞에 앉아 있는 수염은 다른 사명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속에 찾아낸 기쁨. ”아로네스를 이용한 자가 치료에서 드라이 오르가슴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우스꽝스럽고 비밀스럽고 당황스러운, 그리고 부끄럽고 이상하기까지 한 그 상황 속에서 이 부장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직장인이자 가장인 자신의 삶이 그저 의미없이 소모되어 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쾌락을 통해서야 자신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과정속에서 자기 개발은 우리가 흔히 아는 공부나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40대 후반의 삶을 살아가는 가장이자 직장인에게 마치 강박과 속박처럼 다가오는 자기 개발’.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그 의식속에 습관처럼 찾아내는 자기 개발과는 다르다.

여기서 자기 개발은 그저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오르가슴에까지 이르게 하는 능력의 개발이라기 보다는 그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부장은 문득 다른 감각과 통증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소리든, 빛이든, 냄새든, 촉감이든, 오르가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통증만은 방해가 됐던 것일까? 이 부장은 한손에 아네로스를 낀 채 잠시 자신이 겪은 고통과 쾌락에 대해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뜻밖에 그 두 감각이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외부 자극에 대한 강도를 느끼는 오감과는 달리, 두 감각은 육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감각이었다. 오직 고통이 주는 아픔과 쾌락의 전율만이 그곳에 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이 부장은 비로소 자신을 지배하던 허기와 상실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동안 열심히 사라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자신이 부재했다. 오르가슴이, 전립선의 통증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절감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 부장은 무엇이 자신을 고양시켜 주었고, 자신이 하는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혹은,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모든 행위들. 특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덕관념에 어긋하는 행위들은 항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위험성이 무서운 것은 그것을 우리가 통제하려고 해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장의 자기를 찾아가는 개발의 과정은 그렇게 위험성을 내포한체 달려간다.


그날 밤 이 부장은 모처럼 홀로 술을 마셨다. 탁자 위에 희고 순결한 아네로스를 꺼내 놓고 기억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위스키 병을 땄다. 목을 타고 전해지는 크레졸 향에 몸을 부르르 떨며 오르가슴이 그를 얼마나 인간답게 만들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 부장은 생각했다. 갈비뼈는 시간이 지나면 붙게 마련이고 아네로스는 다시 쓰면 그만이야.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물론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동시에 다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계획이 계획대로 될 턱이 없었다.


 

그리고 결말의 아찔함은 이 부장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를 선물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개발의 정석속 이 부장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불합리한 환경, 사회, 가정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아주 조금이나마 찾아내었을 것이다.

그 수단이 사회통념상으로는 당황스럽지만 말이다.


이 부장의 인생 최대의 위기목록에서 비뇨기과의 트인 바지2위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