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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자본주의 - EBS 다큐프라임 : 빚을 창출해야만 돌아가는 자본주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0. 4. 13.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왜 우리는 더 잘사는게 아니라 더 궁핍해 지고,

찰리채플린이 말하던 공장속 하나의 부속품처럼 생활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문들을 흔하게 접한다.

(절대적인 삶의 질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노동을 통한 부의 증가'와 '자본을 통한 부의 증가'의 차이가 더욱더 확대되고 있음에, 거기에 편승하지 못함에 좌절하기도 한다.

노동의 가치로 대변되는 임금은 물가상승율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가상승율의 한계를 넘더라도 결과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경기의 상승국면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경기의 하락국면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것에 대해 사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수요가 줄어 공급을 소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물가가 오른다니

우리는 물가가 오르는 이러한 현실을 결코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이를 '은행(자본가)'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설명한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은행(자본가)'의 속성상 100원의 예금을 받아 '지급준비율(%)'을 제외한 나머지를 대출 또는 투자하게 된다.

실제 예금 100원이 서류(통장)에 찍히는 순간, 내 예금 100원은 통장에 숫자로 존재할 뿐

현금은 예금은 대출 또는 투자에 90원이 활용된다.

없었던 돈 90원이 갑자기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자도 갑자기 생기게 되고)

이 돈 90원이 다시 예금이 되고, 80원의 대출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80원이 또 어디서 불쑥 생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대출, 투자가 늘어날 수록 돈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아니면 정부가 '양적완화'를 통해 돈의 양을 늘리던가 말이다.

그렇게 돈의 양은 실물의 양이 아닌 서류상의 양으로 급증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가 성장하게 되는 기본원리가 되었다.

(서류상의 돈을 만들어 실물상의 돈이 늘도록 만드는 효과라고 할까??? 성공하면 말이다.)

그런데 모든 예금주가 예금인출을 일시에 원한다면? 그것이 금융권부도, 국가부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된다.


빚이 늘어나고(이자가 발생) 이런 현상이 돌아야만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틀 안에서

개인의 노력은 빚의 테두리 안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시스템이 작동하면 더더욱 그 구조들이 고착화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성장과 부침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대다수의 일반인, 특히 소득이 적은 사람에 대한 '복지자본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공급이 늘어나는 데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야 된다. 그런데 만약 경제성장의 결과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으면, 생산의 증가를 따라갈 수 있는 소비의 증가가 수반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과잉생산이 발생하여 공황이 일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공황은 ‘분배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경제성장은 제대로 된 분배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맬더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자의 주머니를 채워라. 그러면 소비가 촉진된다.’


이 책이 2013년에 발간되었지만 이 논제에 대한 다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보수주의에서는 기업이 성장해야 국민들도 잘 산다는 '낙수효과'를,

진보주의에서는 국민이 전체적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가야 기업도 성장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하고 있다.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 둘의 방식도 장점과 단점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성과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너무도 많은 영향변수들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여전히 이러한 고민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빚은 ‘선’이다. 빚이 없으면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빚이 있는 사람은 착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빚 권하는 사회'이다. 집이 없으면 새로운 돈이 더 이상 창조되지 않고, 돈이 창조되지 않으면 자본주의도 망가지기 때문이다.



통화량이 증가해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경제현상을 우리는 통화팽창, 즉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장 핵심에 바로 ‘은행’이라는 존재가 있다. 은행이 있기 때문에 돈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는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도 아니고,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때문도 아니가. 그것은 바로 은행 때문이며, 은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누렸던 호황이라는 것이 진정한 돈이 아닌 빚으로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해서 만들어낸 돈이 아니다.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또다시 돈을 낳으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의 정해진 길을 걷고,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권력을 획득하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영국의 통화를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영국의 통화를 지배한다.

-네이선 로스차일드-



1971년은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금태환제’를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달러가 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역사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거의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조치를 통해서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고 원하는 대로 빚을 질 수 있게 되었다. 금의 보유량과 전혀 무관한 화폐 발행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금융업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명목화폐의 출현이었고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소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소비 마케팅은 최첨단 기술과 과학을 동원해 우리를 ‘착각’과 ‘불안’ 속에 빠뜨리고 끊임없이 과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자신의 수입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 빚을 지게 된다. 과연 당신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성인이 된 우리의 소비 습관과 성향은 이미 수십 년간 진행된 ‘키즈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합리적으로 결정해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던 습관의 산물로 소비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부모는 상당수가 아이들의 영향에 의해 소비하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놀라운 비밀 중의 하나이다.



사회적으로 배척을 당했을 때는 이를 보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타인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이것이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 나라를 정복해 예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빚으로 하는 것이다.

-존 애덤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부자들의 무한정한 이익 추구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결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결국 부자나 가난한 자나 평등하게 그 틀 안에서 부를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호황과 불황의 순환 또는 경기순환이다. 마르크스는 미래의 자본주의는 경기순환을 피할 수 없다고 했으며, 경기순환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주기가 짧아져 결국에는 자본주의 종말을 가져올 거라 생각했다.

또한 쉬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가 왜 가난해 지는 지를 ‘이윤’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확보하여(더 많이 일하게 하거나 임금인상을 억제한 단위당 노동임금을 낮춤으로써) ‘절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한 후, 더 좋은 기계(생산설비) 등을 들여와 단위당 생산량을 늘임으로써 ‘상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 한다.



케인즈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첫째, 좋은 수준의 고용률. 둘째, 더 평등한 사회.

정부는 완전고용에 대한 책임이 있고 최상의 고용률과 생산율을 유지해야 한다.

불평등한 소득분배는 세금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경제는 관리의 수요가 있을 때만 완전고용을 하려 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수요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정부뿐이므로 케인즈는 정부의 관리에 의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다.


하이에크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정부는 점점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규제하게 되어, 비효율적인 체제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1969년 미국에서는 불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해서 상승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케인즈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하였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인간의 행동은 불완전한 지식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계획자의 부족한 지식 때문에 중앙경제계획은 실패하기 쉽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경쟁적인 과정에서 많은 의사결정자가 다양한 결정을 내리는 환경에서 의사결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모두가 잘살게 될 거라는 아담 스미스의 예언도 틀렸고, 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예언도 틀렸다.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케인스도, 시장을 믿어야 한다는 하이에크도 이제 더 이상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심혈을 기울여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대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온갖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고장 난 자본주의를 바꾸기 위해 바로 국민을 위한 복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정부도 시장도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 되어 시장을 움직이고 자본주의를 움직여야 한다. 현재 자본주의가 낳은 양극화, 불평등,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복지는 자본주의 하에서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세금을 내서 그 돈으로 보험을 싼값에 공동구매하는 것과 같다.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지금껏 막대한 인류의 부를 만들어냈던 근본적인 동력이자 시스템이 되어 왔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가 돼야 하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자본가, 은행, 정부를 위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의 혜택은 이제 99%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 강력한 성장엔진을 우리 모두를 위해 나누어 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소득의 불균형을 해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모습이 바로 가장 영속가능한 자본주의는 아닐까, 하는 제언을 감히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