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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하늘과 허수아비 - 이문길

by 심심한 똘이장군 2020. 3. 22.

공허함이 느껴진다.

사랑했던 아내와의 사별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단어 하나하나, 여백 하나하나 사이에 감추어져 있다.


살아있으니 시 쓰는 것에 끝이 있느냐면서도

더 쓸 것이 없어서 이쯤에서 끝내려 한다는 시인의 "자서" 이야기는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서도

여전히 쓸쓸히 세상사에 홀로 남겨진 허수아비와 닮아있다.




모름

 

길 가다 꺾여져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웃었네

 

왜 웃었는지

나도 모르겠네



 

산 앞에 서 잇으니

갈 곳이 없구나

 

쳐다볼수록

낯설어지는 산

 

오늘 저 산이

어디 가다가 돌아와 있으니

 

이제 내가

떠나야겠다



구름

 

구름을 보면

눈물이 난다

 

하늘이 너무 넣ㅂ어

눈물이 난다

 

구름이 없어져

눈물이 난다

 

하늘이 너무 넓어

눈물이 난다



하늘 4

 

하늘이 쓸쓸해진 것을

본 적이 있느냐

 

햇빛이 왔다가 모여간 빈 곳

그 뒤를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본 적이 있느냐

 

하늘이 쓸쓸해진 것을

본 적이 있느냐

 

혼자 남아 있는 하늘을

본 적이 있느냐



허수아비

 

산속 새로 나는 길에

허수아비가 있어

한동안 불 켜고 손 흔들더니

아스팥트 공사가 끝나자

들고 있던 불 꺼졌다,

 

할 일이 끝났으니

할 일 없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후 허수아비는 모자가 벗겨지고

옷이 찢어지고

팔이 떨어졌다

 

아직도 허수아비는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할 일이 다 끝난 뒤에

혼자 남아 서 있다는 것은